한국일보

인디언과 아이누

2012-09-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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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기(골동품 복원가)

‘인디언’은 통칭 아메리카 원주민을 말한다. 이들은 잔인하게 도태 당하여 일정한 보호구역 속에서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 ‘아이누’는 일본의 원주민을 말한다. 이들은 일본 홋카이도 오지에서 마치 고대 유물과도 같이 보호를 받고 있다. 인디언의 땅 아메리카대륙은 콜럼버스로 상징되는 유럽의 백인에 의해 문명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면 아이누의 땅 일본은 누구에 의해 언제부터 오늘의 일본으로 성숙 되었는가 일본고대사를 중심으로 추적해 본다.

빙하시대(구석기시대 기원 1만 년 전) 일본은 대륙의 끝단(한반도, 사할린, 알래스카)과 얼음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기원전 1만 년 경 해빙기에 접어들면서 일본은 열도(섬)로 변한다. 이때 살던 사람들이 남긴 토기에 새끼줄 무늬가 있다하여 이 시대를 ‘조몬시대’라 한다. 이들이 바로 아이누족의 선조이다(기원전 1만 년-기원전 3세기). 이때는 사람이 채집과 수렵으로 생존을 유지해 갔다.


인간을 문명으로 이끄는 것은 농경과 목축이다. 기원전 3세기경 벼농사를 짓고 금속제 도구를 사용하는 무리들이 갑자기 규수북부(후쿠오카 . 사가)에 나타나더니 긴키 지방(오사카 . 나라 . 교토)으로 퍼져나갔다. 이때를 ‘야요이 시대’라 하며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까지 600년 지속된다.

밭농사와는 달리 벼농사는 고도의 농사기술과 집단노동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벼농사의 유적이 규슈북부지방에 돌연히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조몬문화의 내적인 발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인간에 의한 인위적 현상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 외부란 바로 한반도라는 것이다. 당시의 선박수준이란 뗏목에 조잡한 돛을 단 수준이다. 최선의 항해수단은 조류(해류)를 이용하는 것이다. 한반도 남해안 어디서라도 뗏목을 바다에 띄우면 대마도를 거쳐 일본 규슈에 갈 수 있었다. 당시 일본에 건너간 다수의 반도인은 ‘가야인’으로 추정된다. 그때 신라와 고구려의 공격으로 가야국이 망하고 그 유민이 대거 규슈북단(조류가 닿는 곳)에 이주해갔기 때문이다.

고분시대(AD3-AD7)에 접어들어 한반도형 지석묘(돌받침묘)가 규슈북부 특히 긴키 지방(나라 · 오사카 · 교토)에 집중적으로 형성되었다. 그 원인의 하나가 백제의 멸망(AD 660)으로 인한 백제지배층의 대거 이주이다. 일본의 역사학자 시바요다로는 그의 저서에서 당시를 이렇게 묘사한 바 있다. “나당연합군에 패한 백제유민들이 거친 파도와도 같이 일본열도에 밀려들었다” 또한 일본 도쿄대학 하니하라 가즈오 교수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7세기경 조몬계 자손(아이누)과 이민계 인구비례가 1:9.6 라는 결론을 얻었다. 특히 통일국가(야마도 정권)의 본거지인 긴키 지방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주자가 있었고 이들은 모두 한반도인이다.

일본은 단일민족이 아니고 소수의 원주민과 다수의 한반도 이주민 혼혈로 이루어졌다” 특히 세계적 인류학자 제럴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일본인의 뿌리는 한국인”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이것이 살아 숨 쉬는 역사의 소리라는 것을 오늘에 생존하고 있는 아이누족이 눈을 똑바로 뜨고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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