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77명과 21년

2012-09-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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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사람, 즉 인류가 태어나기 전엔 법이란 것은 없었다. 아니, 인류가 태어난 초기에도 성문화된 법은 없었다. 그 때엔 힘만이 법이었다. 힘이 가장 센 자가 하는 행동과 지침이 바로 법이었고 그 법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죽음밖에 없었다. 그러니 약육강식이 그 땐 법이었고 힘이 약한 자들은 힘이 강한 자들의 소유물밖엔 되지 않았다.

문자가 발명되고 씨족에서 부족, 부족에서 국가를 형성하게 된 인류는 발명된 문자로 성문화된 법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법이 지금은 없어서는 아니 될 규정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며 모든 문제해결의 잣대로 자리매김 됐다. 육법전서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각 나라엔 수없이 많은 법이 제정돼 온갖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곤 한다.


지난 8월24일 노르웨이의 오슬로 지방법원은 2011년 7월22일 77명의 목숨을 총기로 앗아간 테러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33)에게 징역 21년을 선고했다. 브레이비크는 오슬로의 정부청사에 폭탄을 투척해 8명을 숨지게 했다. 이어 그는 집권 여당인 노동당의 정치 캠프가 열리고 있는 우테위아 섬으로 이동해 69명을 사살했다.

캠프 참가자들에게 가한 무차별 난사였다. 그는 섬에서 한 시간 가량 돌아다니며 권총과 카빈총으로 보는 대로 사람을 죽였다. 결국 체포돼 1년여의 재판 끝에 그가 선고받은 형량은 “죽은 사람 1명당 3개월 꼴”인 21년이 고작이다. 어디서 이런 법이 나왔을까. 아무리 사형제도가 없다는 노르웨이 법을, 이해하려해도 정리가 되질 않는다.

한 사람의 생명과 목숨은 우주보다 귀하다. 진정으로 세상에선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으니 그렇다. 부귀영화가 하늘처럼 쌓여있다 하더라도 생명이 사라지면 그 사람에겐 물거품이 된다.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노르웨이 법이 77명을 죽인 테러범 한 사람의 생명이 우주보다 더 귀하여 고작 21년의 징역형만 선고했을까.

그렇다면 그 한 사람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77명. 그들 생명의 대가는 무엇인가. 그들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이 당하고 있는 슬픔의 대가는 또 어쩔 건가. 법정에서의 브레이비크. 그는 비웃는 얼굴로 팔을 쭉 펴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사형제도 없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잣대로 이런 자에게 웃음을 짓게 하는 것은 잘못된 법이 아닐까.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선고받고 사약을 받았을 때 한 말이 “악 법도 법이다(Dura lex, sed lex)”이다. 그 말의 뜻은 법은 엄하지만 그래도 법이다란 의미다. 그는 그 말을 남긴 채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 일부 학자들은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권위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를 빙자하여 말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어쨌든 악법도 법임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르웨이 법원의 브레이비크에게 선고된 형량인 종신형도 아닌 21년형은 법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21년 후 그가 감옥에서 나와 또 다시 그런 끔찍한 테러를 범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기에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중 하나인 노르웨이지만 법하나만큼은 아주 허술하다.

1902년 프랑스 발굴대에 의해 페르시아 수사(Susa)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법전 하나가 발견됐다. 흑현무암비석에 설형문자(BC 3500-1000년경 바빌로니아인등이 사용했던 쐐기문자)로 쓰여 진, BC 1700년경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왕이 만든 법전이다. 법전엔 민법, 상법, 형법, 소송법, 세법, 노예법 등 282조가 들어 있다.

이 법전엔 고대 탈리오의 법인 동해보복형(同害報復形)이 그대로 적용돼, 모세의 율법보다 먼저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성문화 돼 있다. 함무라비왕은 “나라의 정의를 구현하고 강자가 약자를 학대하지 않고 악인이나 비뚤어진 자를 멸하기 위해서” 법을 제정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3,700년 전에 만들어진 이 법. 법의 정의를 잘 말해주고 있다.

법보다 주먹이, 아니 법보다 총이 더 가깝다. 한 사람에 의해 77명이 죽었는데 내려진 판결은 고작 21년의 징역형. 함무라비왕이 이 사실을 안다면 무덤에서도 벌떡 일어날 것 같다. 무엇이 잘못된 건가. 또 다른 참변을 막기 위해서라도 함무라비법전에 있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동해보복형을 브레이비크에게도 적용시켜야 하지 않을까. 노르웨이 법전에 문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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