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자체가 예술

2012-08-3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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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얼마 전 뉴욕을 다녀간 한 대학교수가 자신이 다 읽은 책이라며 책 한권을 두고 갔다. 커리어 우먼 사이에 인기가 있어 돌려가며 읽는다는 이 책은 뉴욕에 사는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The Artist’s Way)다. 나를 위한 12주간의 창조성 워크샵을 다룬 책인데 이 책을 읽은 후 사람들이 놀랍게 변했다고들 한다.
작가는 우울증, 알콜중독 극복과정에서 인간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바로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처럼 상처입은 사람들의 창조성을 치유하고 어루만져줄 소명감을 느끼고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을 읽은 후 오랜 세월 반주자였던 음악가가 화려한 솔로 앨범을 내고 그림을 못그리던 화가가 걸작을, 시청률이 하락하던 드라마 제작자가 대박을 터뜨렸다니 “과연 어떤 책이길래?” 하는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술이 직업이든 취미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그런 것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지닌 내면의 창조성을 깨닫고 그것을 키우고 보호하는 법을 배워준다니 읽어볼 만 하지않은가.
작가는 창조성 회복 과정으로 ‘모닝 페이지’와 ‘아티스트 데이트’ 두 가지를 들었다.


모닝 페이지는 아침에 일어나 의식의 흐름을 차분하게 세 쪽에 걸쳐 쓰는 것이다. 생각나는대로 써내려가는 것으로 이는 일기도 작문도 아니다. 멋있게 쓰려고 애쓰지도 말고, 그저 충실하게 써내려 가면 된다. 처음 8주 동안 자신이 쓴 모닝 페이지의 앞장을 절대 보지 말고 사소하고 유치하고 바보같은 내용도 그저 써나가다 보면 누구든지 자신의 내부에 있는 지혜의 샘에 닿을 수 있다고 한다.

먼저 모닝 페이지를 쓴다는 데는 공감이 갔다.우리 모두, 일기를 써본 적이 언제던가? 초등학교 시절 숙제로 일기를 썼었고 담임선생에게 검사를 받았었다. 대부분 새해,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마음먹고 시작한 일기가 사흘, 길어야 한달을 넘어간 적이 없을 것이다. 미국생활이 바쁘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다보니 대부분 전자기기에 의존하거나 작은 수첩에 메모 정도이지 장문의 일기는 쓸 엄두를 못낼 것이다. 주위에 일기를 쓰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는 작가, 아니면 천연기념물처럼 여길 것이다. 그리고 아티스트 데이트는 매주 두시간 정도 시간을 정해 두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해보라고 한다.

해질녁 바닷가 거닐기, 고물상 헤집고 다니기, 옛날 영화 보러가기, 수족관· 미술관 가기, 오랫동안 시골길 걷기, 찬송가 들으러 낯선 교회 가기, 동네 문구점 가서 별 스티커·공룡·크레용 등 유치한 것 사서 노트에 붙이기 등을 놀이처럼 즐기면서 어린아이같은 자기 내면의 아티스트를 키워가라고 한다. 사실 누구나 살면서 자기마음대로 살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늘 비즈니스나 집안 살림, 육아, 혹은 체면 등으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고 있다. 이 책은 이외에도 여러 가지 스케줄을 따르고 과제를 주는데 나는 이 두 가지가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화나고 속상해도 글로 써나가다 보면 서서히 풀려버린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혼자 앉아 조용히 글을 쓰면서 씩씩거리고 화내고 소리치고 복수를 다짐하는 풍경은 어울리지 않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명상의 세계로, 자신의 의식의 흐름을 지켜본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인생을 5년 단위로 나누고 각각의 시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이 무엇인지 써보라고 하는데 사실 우리는 열심히 달려만 왔지 뒤돌아보면서 살지는 않았다. 또 1년후, 5년후, 10년후의 스케줄을 예상해 보자. 10년 후, 어떤 생활을 할 까 상상해 보는 것도 아티스트 데이트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여튼 이번 주말 모닝 페이지를 쓸 예쁜 노트를 사러 갈 것이다. ‘글’이란 말에 ‘으악’하는 분들도 한번 모닝 페이지 쓰기에 도전해 볼 것을 권한다. 인생이 달라진다지 않는가. 아티스트 데이트도 해 보자, 우리의 삶 자체가 예술작품이 된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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