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욕주 윌로부룩 학교 사태 40주년

2012-08-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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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서(한미정신건강협회/컬럼비아 교육대학원 강사)

얼마전, 참으로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의 장애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와 복지설비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참으로 많은 발전에 놀라울 뿐이었다. 불과 20여 년 전 장애인, 특히 자폐장애인이나 정신장애, 지적장애인들이 숨겨지고 학대당하던 역사가 이제 변하고 발전하고 있는 것에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하지만 장애인을 위한 여러 가지 법적, 제도적 보호장치, 국가차원의 재정지원 뒷받침은 여전히 많은 개발과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나는 대부분 특수학교 관계자들이 미국은 장애인을 위한 법제도에 오랜 역사가 있다고들 믿고 있었다.


사실, 미국에 장애교육법이 연방법으로 채택된 것은 1975년 Education for All Handicapped Children Act (Public Law 94-142)이 최초였다. 이 법은 계속적으로 관련법 변경과 첨부를 거쳐 현재의 Individuals with Disabilities Education Act (IDEA)로 자리잡았다.

물론, 이법의 비준은 미국사회에 1950년대 말부터 불기 시작한 인권운동의 산물이기도 했다.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40년전 미국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뉴욕주 윌로부룩 학교(Willowbrook State School)의 사건이 오늘날 미국의, 특히 뉴욕주의 발달장애관련 복지 및 교육법규에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뉴욕주 윌로부룩 학교는 특수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법이 없었던 1930년대 당시, 뉴욕주가 지적장애아동을 별도 수용하기 위해 스태튼 아일랜드에 세운 대규모 특수학교 시설이었다. 그러다가 2차대전 이후 상이군인 병원으로 사용되었고, 60년대부터 다시 지적장애 및 발달장애아동과 청소년들을 수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시설안에서는 상상을 초월한 학대와 범죄가 장애인들에게 가해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빛도 들지 않는 처참하게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묶이거나, 옷을 벗은 상태로 생활하였으며, 교육의 기회조차 받지 못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사울 크루그만박사(Dr.Saul Krugman)는 수용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간염생체실험까지 자행했다. 그러나 점차 지역신문과 내부의료진들의 고발로 그 실태가 외부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지금부터 40년 전, 1972년 1월, 월남전 참전 기자로 유명한 호랄도 리베라(Geraldo Rivera)가 내부에서 일하던 한 의사와 몇명의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카메라를 들고 시설로 잠입해 들어갈 수 있었다.

카메라를 통해 그 처참한 실상이 WABC TV에 방송되었을 때, 미국민들의 충격은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의 인권문제라면 앞장서 큰소리 내는 미국, 그러나 자신들의 안방, 뉴욕이란 곳에서 자신들의 장애인 딸과 아들들에게 인권유린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후 40년의 세월동안에 미국은 장애인의 교육의 권리와 인권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를 그 어느 나라보다 과감하게 개혁하고 발전시켜 왔다. 그런 발전이 이루어져 올수 있었던 바탕에는 아마도 잘못된 것에 대한 용감한 고발과 시인,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끌어안고 함께 살아갈 사회적인 인식의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는 장애를 가진 사람과 더불어 만들어가는 한국, 좀 남과 달라도, 모자라도 행복할 수 있는 한국을 자랑스럽게 내보일 날이 왔으면 하고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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