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눈물의 미학

2012-08-2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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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눈물의 색깔은 하나다. 기쁨의 눈물이나 비애나 슬픔의 눈물, 행복의 눈물이나 고통의 눈물, 이별의 눈물이나 만남의 눈물, 어떠한 경우에라도 보이는 눈물의 색깔은 하나이고 고통과 시름에서 나오는 눈물이라도 그 눈물은 맑고 아름답다. 삶에는 이것저것 섞는 일이나 섞이는 일이 많지만 인생에는 아무 것도 섞지 마라 하면서 눈물에는 전혀 티를 섞지 않는다. 인생을 바라보는 그 속내가 그저 맑을 뿐이다. 이런 눈물의 본질이 나는 시(詩)라고 여겨왔고 시(詩)가 곧 인생이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아름다운 내용의 눈물이라고 여겨왔다.

인간에게만 많은 눈물이 있다. 동물에게도 눈물은 있지만 그 양은 극소량, 아니면 한 방울의 양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에게만 흘려도 흘려도 끝없이 흐르는 막대한 양의 눈물이 있다. 인간은 아름답고 또 아름다워야 한다는 내용이다. 화를 품은 사람이나 인간이 아닌 인간에게는 눈물대신 소리가 많아 짐승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인간이 아닌 인간은 눈물이 어디서 나오는지, 왜 나오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눈물은 아름다운 사람의 아름다운 소산물이다.
눈물로 기도 하는 사람, 눈물로 용서를 비는 사람, 눈물로 기쁨과 환희를 토해내는 사람, 눈물로 이별을 하는 사람, 눈물로 다시 만나는 사람, 눈물로 아들의 손을 잡는 아비, 눈물로 자식을 바라보는 어미의 소리 없는 울음, 꽃향기 같은 하늘의 부름으로 눈을 감는 임종의 눈물, 눈물은 향수가 고향이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기어 날 때 흘리던 눈물은 아마도 죄를 짓기 이전의 에덴에 대한 향수일 것이고, 에덴을 잃어버린 인간의 향수는 그때에 무한히 누리던 사랑일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아담과 이브의 후예들은 잃어버린 하느님의 사랑이 향수가 되어 향수를 그리움이라고 정의 하고 그리움을 안고 한 생애를 산다. 에덴에는 아담과 이브의 전체를 돌보아 주시는 하느님이 계실 것이고 삭막한 세상에서의 사랑에는 나를 돌보아 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기에 아담과 이브나 인간은 사랑을 찾으며 향수에 몸을 떤다.


수화(手話)를 섞어 ‘사랑의 맹세(till)’를 노래하는 한국의 흑인 혼혈 여가수 쏘냐를 보면 눈물이 난다. 눈물이 말라간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자본주의나 민주주의에 눈물이 있었던가? 처음부터 없었다. 두들겨 맞아 멍이 들고 피가 나야 나는 눈물은 인간의 눈물이 아니고 그로인해 치르는 전쟁의 잔혹한 참상에서 오는 눈물은 눈물이 아니다. 손해를 보고나서 땅을 두드리며 쏟아내는 눈물은 인간의 눈물이 아니다. 원망스럽고 미워서 흘리는 눈물은 인간의 눈물이 아니다. 그리움이 끼어들고 향수가 어른거리는 눈물이 아름다운 인간의 눈물이다.

흐르는 것을 보고 흘리는 마음의 눈물, 흐르는 것은 모두 아름답고 사라지는 것도 모두 아름답다고 여기며 자취를 감추는 형상을 껴안고 흘리는 눈물. 사라지는 새벽 별이나, 힘들게 어깨를 좁혀 빛을 버무리다가 사라지는 초승달의 이마를 보고 흘리는 눈물은 아름답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에게 인간의 눈물을 모르는 자식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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