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중 언어

2012-08-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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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언어
윤석빈(교도소 심리학자)
유대인의 디아스포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한국인들도 세계 각국에 퍼져나가 살게 되고 불가피 이중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조사에 의하면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이중 언어 사용자이고 미국 내에만도 영어외의 언어를 배경으로 하는 사람이 약 3천만, 매일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1천5백만 명이라고 한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언어가 접촉할 때 이중 언어 사용의 현상이 일어나는데 사실 두 언어의 접촉은 서로 동등한 자격으로서 접촉이 아니라 소수와 다수의 접촉을 이룬다. 그러다가 소수언어는 다수언어에 흡수 동화하여 이중 언어가 다시 단일 언어로 돌아가는 협상이 이루어진다. 사회적 상승을 위해 다수언어를 마스터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민주주의 평등과 기회의 균등 그리고 영어는 종족어가 아니라 세계어라는 의식 때문에 이중 언어가 단일 언어로 되기가 쉽다.
이중 언어 사용자에게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첫째. 이중 언어사용자는 엄밀히 말해 글이나 말로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큰 폭의 차이가 있다. 즉 전문학자들은 2개 국어를 글로 쓰고 읽을 수는 있으나 그 언어를 귀로 듣고 말라하는 능력은 없는 이가 많다. 새로 이민 온 사람 중에 귀로 알아듣기는 하나 말로 표현하는 능력은 없는 경우가 많다. 둘째 이중 언어 사용에는 외적인 기능과 내적인 기능이 있다. 가정이나 직장, 학교, 교회에서 쓰는 언어 그리고 신문읽기와 TV방송 청취 때와 언어기능은 외적인 기능이다. 그러나 셈세기, 기도, 욕(swearing) 그리고 꿈속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내적기능의 언어이다. 셋째 이중 언어를 아무리 잘 하는 사람도 두 언어를 똑같이 다 잘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두 언어중 하나는 더 강하고 하나는 좀 약하다. 넷째 각 개인의 언어역사와 배경의 차이 때문에 이중 언어의 사용의 면모가 달라진다.

그의 교육과 직업이 이중 언어 구사력에 영향을 준다. 마지막으로 외국어 구사력이 매우 좋은 사라도 그 사람에게 그 외국어를 계속해서 사용할 필요가 없어지면 언어구사력은 약해진다. 그리고 노년에 들면 모국어와 같이 심리적으로 강하게 심어진 언어는 남고 그 밖의 외국어는 상실된다. 대체로 한국이민 자녀들의 학교성적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양호한 편이다. 이것은 한국부모들의 높은 교육열과 성취지향적인 태도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자녀들이 공부는 잘 하지만 그들의 언어실력은 다른 실력에 비하여 좀 떨어지는 경향이 없지 않다.

이유는 한국부모들에게 교육열은 있으나 ‘학구열’은 없고 성취지향이 질적이기 보다 양적, 물질적 지향이고 무엇보다 부모들에게 ‘문화의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이중 언어 사용과 함께 민족의 긍지, 민족문화, 민족의식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한민족이 우수한 두각을 나타내는 민족이 되려면 그 민족의 고유 언어와 고유문화를 고취 앙양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오히려 언어자체에 대한 애착심과 모든 언어적인 것에 대한 날카로운 식별력이 있어야 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문구가 있다. 이 말은 태초에 히브리어가 있었다든지 태초에 그리스어가 있었다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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