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직에서 수평으로

2012-08-1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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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어떤 모임에서나 거기서 귀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 즐거움이 있다. 전체적으로 부실했던 모임에서도 교훈을 얻는가? 그렇다. 그 부실했던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도 큰 교훈이 된다. 그런데 지난번에 있었던 재미한국학교협의회 제30차 학술대회에 참가했던 필자는 마스터 키(만능열쇠)를 얻었다. 마스터 키는 어떤 자물쇠도 열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게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인가?

그 열쇠의 역할은 ‘수직에서 수평으로’ 이다. 수직은 똑바로 드리운 모양 즉, 수평에 대하여 직각을 이룬 상태를 말하고, 수평은 잔잔한 수면처럼 평평한 모양을 뜻함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열쇠의 역할이 위대한 이유가 불분명하다면 설명하겠다. 생활 주변을 살펴보면, 수직을 이루는 인간관계를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을 수평관계로 바꿀 때 이 열쇠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 사장과 회사원, 공무원과 시민, 대통령과 국민...등의 관계가 거의 다 수직 관계이다.


그래서 “공부해, 청소해라, 목욕해라, 이 대학 말고 저 대학에 가라”가 된다. 또 “언어동작을 바르게 해라, 친구와 싸우면 안 돼, 숙제를 안하면 벌을 받는다”가 된다. 이럴 때 마스터 키를 사용하면 “네 의견을 알고 싶다, 우리 집 거실을 어떻게 꾸밀까, 방이 깨끗이 정리되니까 공부하기 편하겠다, 목욕을 하니까 보기 좋다”가 된다. 또 “전보다 말을 똑똑히 하게 되었구나, 친구와 재미있게 논 이야기를 해보자, 숙제를 해오면 ‘약속 지킨 카드’를 주겠어요”가 된다. 또는 “학생들이 서로 의논해서 정하면 어떨까?”가 된다.

사회에 있는 수직관계는 맡은 일을 수행하기 위한 방편이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인간관계이며 이것은 엄연히 수평관계이다. 우리는 가끔 이 사실을 잊는다. 백지에 수없는 수직선을 긋는다. 하나하나가 독립된 수직선은 개성만 있고, 개별적이며 상호 연관이 전연 없는 각개 약진의 고립체이다. 너무 쓸쓸하다. 그래서 각 수직선을 잇는 수평선을 보탠다. 각 수직선은 서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수평선으로 이어지는 인간관계는 개성의 아름다움을 발휘하면서 대화를 시작한다.

인간사회가 수평관계를 유지하게 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우선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성을 서로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자연스럽게 기탄없는 대화가 이루어진다. 대화를 하는 동안에 자기 이외의 다른 세계를 보게 된다. 대화하는 그룹이 커지면서 여럿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어 협력하는 힘이 길러진다. 여럿이 협력하면서 일하는 동안에 일의 크기가 확장되면서 국적, 민족을 초월한 범위로 확대된다. 이렇게 되면 개인은 큰 그룹 속에서 활약하게 된다.

수직 속의 개인은 작고 자기의 굳은 껍질 속에 꼭 갇혀있지만, 수평 속의 개인은 타인과의 연결로 넓은 세상에서 숨쉬며, 마음과 몸이 자유롭다. 이런 현상은 언뜻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수직에서 수평으로’ 의 열쇠를 자주 사용하기로 한다. 이렇게 행운의 마스터 키를 얻게 된 것은 ‘라운드 테이블’ 덕택이다. 우선 몇 학교장이 각자 학교의 운영 방침 소개가 있었고, 각 테이블에 앉은 10명 교사에게는 질문지를 나누어 주었다. 질문지의 내용은 학교 경영상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적혀있다. 각 테이블의 회원들은 각자가 실행하고 있는 학교 경영방침 중 하나를 선택하여 설명한다. 다른 회원들은 거기에 대한 질문을 하고 의견도 말한다.

라운드 테이블 형식의 연구 방법은 지루함이 없고, 회원 전원이 설명하고 질문하기 때문에 방청객이나 낙오자가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한 회원이 우리 학교 경영방침은 ‘수직에서 수평으로’ 정신으로 모든 것을 처리한다고 말하였다. 여기서 얻은 ‘마스터 키’ 하나로 별안간 부자가 된 듯하다. 머릿속에 가라앉았던 생각을 되살리게 한 것만으로도 귀한 것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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