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필요한 세 가지

2012-08-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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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예전부터 절에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제대로 수행을 하려면 스승과 도량과 도반, 세 가지의 인연이 있어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이 세 가지는 수도승뿐만 아니라 세상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고 한다. 스승과 생활환경과 친구를 잘 만나야 우리는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 수 있다. 친구 잘못 만나서 신세 망치고 스승 잘 못 두어서 엉뚱한 길로 빠지고 생활환경이 맞지 않아서 온갖 고통을 겪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는 것이다. ‘법정스님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데는 이렇게 정신적인 지주와 생활환경, 그리고 사귀는 친구가 두루 갖추어져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세 가지는 무엇일까.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은 성실히 일하다보면 밥은 먹고살지만 변호사, 의사, 회계사를 잘 만나야 성공적인 미국생활을 보낼 수 있다고들 했다.눈 오는 날 집 앞이나 가게 앞에 미처 치우지 못한 눈길에 넘어진 사람들이 고소를 할 수 있고 사소한 일에도 소송으로 해결하려 드는 미국인들이 많다보니 변호사를 잘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유산을 물려받거나 벼락보다 희귀한 확률로 된다는 복권 당첨이 된다면 당연히 변호사가 필요하겠고 자신의 크레딧이나 신분이 도용되어 심각한 피해를 입을 때도 가장 먼저 변호사를 찾게된다.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날 수 있는 인생사에 잘 아는 변호사가 한 명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다 하겠다.

또 몸이 아플 때 의사를 잘 만나야 한다. 의사를 잘 못 만나면 오진에 엉뚱한 고생을 하기도 하고 병을 키우기도 하며 그럴 때 환자나 가족들은 ‘세컨 오피니언이 필수야’하며 의사 순례를 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여기저기 고장나는 데가 속출하는데 아무리 병원을 다녀도 안 낫는다면 계속 지출되는 병원비도 문제지만 그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심각한 질병이 든 환자에게 실력 있고 자상한 의사를 만나는 것만큼 큰 축복도 없다. 아픈 데를 정확하게 찾아내 고쳐주면 그야말로 생명의 은인이 된다.

그리고 회계사를 잘 만나야 재정 상담과 크레딧 관리를 잘 하고 혹은 환급 받는 액수가 달라지니 이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 모른다.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찾다보니 변호사, 의사, 회계사 이 3대 전문직이 많은 사람이 꿈꾸는 전도유망한 직업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회계사는 다른 직종으로 대체되고 있다 한다. 불경기로 인해 주식, 금융업에 투자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비즈니스가 잘 안되어 폐업, 실직자가 늘다보니 세금보고 할 것도 적어지고 서류가 간단해져 인터넷으로 본인이 직접 세금보고를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 자리는 자동차 매카닉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물건을 딜리버리 하거나 직장 출퇴근시 자동차가 필수인데다 불경기로 인해 새차 구입보다는 중고차를 고쳐 쓰는 경우가 많다보니 자동차 정비공을 잘 만나야 돈이 절약되고 미국생활도 편해진다는 것이다.

몇 년동안 부지런히 엔진 오일을 갈아주고 관리를 잘 해 왔지만 차 소리가 이상하다 싶어 정비소에 가면 여기가 나쁘다, 저기도 갈아야 한다 등등의 이유로 수백 달러는 물론 심하면 수천달러까지 수리비가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 ‘바가지 쓰는 것 아냐?’ 싶어 다른 곳으로 가서 견적을 뽑아보며 싸고 정확하게 잘 고치는 정비소를 그야말로 눈에 불을 켜고 찾으려 할 것이다. ‘빌빌(bill) 하고 살다 가는 미국생활’에서 변호사, 의사, 자동차 정비공 이 세 가지만 잘 알아두면 불편이 없다고 하는데 이 세 가지가 충족된다고 해서 삶이 성공하고 행복할까.

이 세가지의 조건을 갖췄다고 해서 사람들은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내생활의 편리함은 있겠지만 정이 흐르는 인간관계는 담겨있지 않다. 역시 법정 스님 말씀처럼 온전한 미국생활에 필수적인 조건 중 하나는 친구라고 생각한다.
남편이나 자식은 의무이고 책임이다 보니 맘에 맞는 친구가 필요할 때가 있다. 전화로 수다 떨고 만나서 맛있는 것 먹으면서 속마음을 털어놓다보면 힘든 게 사소해지고 사는 게 재미있어진다. 미국에 오래 살수록 친구의 존재가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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