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맨하탄 한국전쟁 박물관에 대한 단상

2012-08-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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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하(사회1팀 기자)

미 해군장교로 한국전에 참전해 1950년 9월 전사한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 대위는 한국을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적군의 총탄에 쓰러지기 며칠 전 쇼 대위는 가족들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남겼다고 한다. “사람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만큼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은 약 170만명. 이 중 약 3만6,000명이 쇼 대위와 함께 태평양 건너 이국땅에서 산화했다.

한국전쟁 휴전 60주년을 앞두고 최근 뉴욕 맨하탄에 이들 참전용사를 추모하는 한국전쟁 박물관 건립이 탄력을 받고 있다. 맨하탄 34가 코리아타운에 자리 잡게 될 ‘한국전쟁 역사문화 기념관(Korean War National Museum, Library and Cultural Center)’은 지난해 미 연방의회로부터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의 지위를 얻은데 이어 현재는 최종 부지선정만을 남기고 있다. 면적은 1만5,000스퀘어피트, 개관은 2015년으로 예정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박물관이 단순히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을 추모하는 공간을 넘어, 한국의 근현대사를 통틀어 보여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민다는 점이다.
지난달 맨하탄 한 식당에서 만난 박물관의 총 책임자 토니 엔리에토 회장은“한국인들이 전쟁에 참전한 미국 장병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미국인들은 현재 놀랍게 성장한 한국에 감탄하며 진정한 의미의 축하를 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것”이라며 “이를 통해 한국과 미국 두 나라의 우정을 잇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물관 건립을 위해 모인 ‘개인 후원 금액’의 상당수가 미국 쪽에 편중됐다는 사실이 조금은 불편한 현실로 다가온다. 박물관 관계자에 따르면 개인으로 나선 후원자 대부분은 미군측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이 주를 이룰 뿐, 한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높지 않다.

현재 박물관 측은 한미 양국 정부기관과 여러 민간단체의 도움으로 필요 자금 대부분을 충당하고 있다. 결국 약 60만 달러로 알려진 개인 후원 모금액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크지 않지만, 이들의 ‘십시일반’ 식 성의표시가 박물관을 추진하는 실무자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음은 부정하기 힘들었다.

이날 엔리에토 회장이 반복해서 사용했던 단어가 있다. 바로‘친구(Friend)’와 ‘우정(Friendship)’이었다. 그는 자국 참전용사는 물론이고, 친구인 한인들에게 큰 선물을 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푼 듯 보였다. 무엇보다 60년 전 함께 피를 흘리며 맺었던 우정이 아직까지 유효하다는 믿음에는 전혀 의심이 없었다.

친구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이야 말로 우정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 주변에 한국전 박물관 건립이 추진되고, 거의 현실화 단계에 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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