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린이나라’방문기

2012-07-3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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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드디어 ‘어린이나라’에 닿았다. 황새를 타고 먼 길 날아왔는데 “이게 뭐야?” 어른과 어린이 수효가 반반쯤으로 보인다. “여기가 어린이나라 맞아요?” 어른 한 명이 달려왔다. “여기는 어린이나라!” 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이어서 “여기 사는 어른들은 겉모습만 어른이지요. 우리는 영원한 어린이들입니다”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첫째 어른어린이가 말하였다. “벌거숭이 임금님 이야기를 기억하세요? 거기에 나오는 정직한 어린이가 바로 저입니다.” 새 옷 입기가 욕망 덩어리인 임금님에게 보이지 않는 옷을 지어주겠다고 나타난 재단사가 말하였다. “그러나 이 옷은 마음이 나쁜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재단사가 지어준 보이지 않는 옷을 입은 임금님의 행렬을 구경하는 사람마다 ‘참 아름다운 옷’이라고 입을 모았다. 모두 마음 나쁜 사람이 되기 싫기 때문이었다. 그 때 한 어린이가 소리쳤다. “임금님은 벌거숭이야!”


둘째 어른어린이가 말하였다. “토끼의 재판 이야기를 기억하세요? 거기에 나오는 토끼가 바로 저예요.” 깊은 산 속 함정 속에 빠진 호랑이를 살려주었더니, 배가 고파서 잡아먹겠다고 달려들어 곤경에 빠진 나그네를 토끼가 살려주었다. “배가 고프면 잡아먹어야지. 그런데 호랑이는 맨 처음에 어디에 있었지?” 하고 묻자 미련한 호랑이가 냉큼 함정으로 뛰어 들어가며 “바로 여기 이렇게” 하고 외쳤고, 나그네와 토끼는 달아났으니 토끼의 지혜를 본다.

셋째 어른어린이가 말하였다. “나는 이태리 소년소설 쿠오레에 나오는 용감한 소년이지요.” 가난한 소년이 외국인에게 돈을 받아서 감사하였지만, 그들이 자기 나라를 흉보는 소리를 듣고 돈을 그들에게 던지며 외쳤다. “우리나라를 흉보는 당신의 돈은 받지 않아. 이거 받아.” “나는 바로 그 애국심을 본받고 싶은 것입니다.”

넷째 어른어린이가 말하였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심청이를 사랑하지요. 어린 심청이의 아버지 사랑 때문이지요. 나도 심청이가 되려고 어린이나라에 살고 있어요. 뭐니 뭐니 해도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 세계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길러진다고 믿어요.”

다섯째 어른어린이가 말하였다. “여러분도 ‘걸리버 여행기’를 읽었지요? 그가 방문한 곳은 큰사람들의 나라였지만 세계에는 가지각색 나라들이 있고, 그 사람들의 생각도 가지각색이지요. 그래서 걸리버의 여행정신을 따라 여기저기 여행하려고 어린이나라에서 살지요.”

여섯째 어른어린이가 말하였다. “요즈음 어린이들은 ‘토끼와 거북’이야기에 대한 해석이 현대적이지요. 나는 토끼처럼 지혜롭고, 거북이처럼 끈기 있게 일하며 살겠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어요. 내 생각도 같아서 여기 살아요.”
일곱째 어른어린이가 말하였다. “어린 시절을 만끽한 사람만이 건강한 성인이 된다는 글을 읽었어요. 그래서 어린이나라에 살면서 부족했던 내 어린 시절을 보충하려고 이 나라에 살지요.”

제각기 어린이나라에 사는 목적이 달랐지만, 어린이들이 가지고 있는 맑고, 밝고, 건강한 생각을 같이 하고 싶다는 마음은 한결 같았다. 여기에 예를 든 정직함, 지혜로움, 나라 사랑, 부모 사랑, 다른 나라에 대한 이해, 비판력 등 때 묻지 않은 어린 시절은 일생의 바탕을 이룬다. 일생동안을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이 세상이 더 풍요로울 것이다.

그럴 수 있다. 일생을 어린이처럼 살고 싶은 사람 모두 어린이나라로 이민을 가면 되지 않겠나. 아니, 그것보다 이 세상을 몽땅 어린이나라로 만드는 편이 더 지혜롭다. 나이가 많아지더라도 어린이처럼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때 묻지 않은 정신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과 어울려서 산다면 그게 바로 어린이나라가 되니까.

어린 시절을 만끽한 사람이 성숙한 어른이 되고, 성숙한 어른을 뒷받침하는 것은 건강한 어린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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