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쉬운 삶은 없다

2012-07-27 (금)
크게 작게
민병임(논설위원)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란 가수가 있다. 80년대초 ‘Hey’라는 노래 하나로 전세계 여성들의 가슴을 뒤흔들어놓은 로맨틱 라틴음악의 황제다. 69세인 그가 최근 자신의 히트곡들을 모은 음반 ‘1’을 발매했다. 그는 “30~45년 전에 작업한 곡을 다시 듣고 재해석 할 때에 아주 먼 과거로 돌아가는 기분이고 당시 전하고 싶었던 의미와 감정, 열정을 기억하게 된다”고 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우리들도 그의 주옥같은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름대로 사연을 떠올릴 것이다.

또 캐나다의 음유시인 레너드 코헨이라는 가수도 있다. 그는 시인이고 가수고 작곡가이다. 싱어송 라이터로서 마치 시를 읊는 듯 ‘수잰’, ‘할렐루야’, ‘아임 유어 맨’ 같은 노래들을 불러왔다. 레너드 코헨은 비오는 날이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날 들으면 딱 어울리는, 굵고 묵직하게 저음으로 깔리는 목소리가 음울하지만 분위기 있다. 그 역시 한국 올드팬들이 많다.


현재 나이 77세지만 작년에 스페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받았고 올 2월 새음반 ‘올드 아이디어스’를 발표하는 등 세계 각국에서 활발하게 콘서트를 가지며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69세와 77세인, 이 두 늙은 남자는 쉽게, 인생을 살지 않았다.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원래 프로축구선수였다. 1960년대 중반 스페인의 프로축구단 레알 마드리드 골키퍼이던 그는 어느날, 친구와 마을축제에 다녀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병원에 장기입원 하여 치료를 받으며 다시는 축구선수로 못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가 왔다. 병상에서 수년간 있던 중 어느 날 간호사가 기타를 가져다주면서 말했다. “지루할 테니 배워서 노래라도 해봐.” 평소 노래라고는 전혀 관심도 없던 그지만 병상에서 기타 치는 것을 배우고 작곡을 배우고 직접 노래를 하면서 그는 스스로 알았다. 자기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 잠재되어 있던 능력이 빛을 발하고 깊은 사고가 바탕이 된 감미로운 목소리로 역사상 최고 음반 기록을 세운 가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가장 인생이 힘든 시기에 새로운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그런 가하면 2010년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받은 레너드 코헨은 인생 말년에 파산 위기를 맞았다. 은퇴를 준비하던 그는 96년과 2001년 자기 음악의 저작권을 소니 뮤직에 모두 팔았는데 대가로 받은 1,000만 달러를 매니저에게 맡겼다가 모두 날렸다. 빈손이 된 그는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음악’으로 다시 돌아왔다. 우리에게 청춘의 문을 열게 하는 이 두사람은 컴퓨터 음악을 위주로 흘러가는 요즘,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주는 감동으로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는다. 모든 역경을 이기고 다시 선 이 노익장들은 힘들다고 울고 머뭇거리고 뒤로 물러서있을 시간이 없다고 한다.

내탓이 아니라고 타인을 원망하고 있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거다. 안되는 일에 미련과 기대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으라고 한다. 올해도 벌써 가을로, 겨울로 달려가고 있다. 무더운 여름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주위에는 여전히 한숨소리가 들린다. 앞날의 희망은 보이지 않고 먹구름만 잔뜩 낀 것이 사는 게 팍팍하고 힘겹다, 가슴이 답답하고 꽉 막힌 것이 소화가 잘 안된다, 먹고 살 걱정으로 잠이 안온다 등등 우울증과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에 이민 와 살면서 한번쯤, 조용히, 소리 소문 없이 모든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사라지고 싶은 심정을 지니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고통을 이기고 절망을 희망으로 멋지게 바꿀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이 세계적인 두 가수 외에 증명해주는 인물들이 많다. 지금, 사업 실패 후 낙담하여 주저앉아 있거나 밤마다 모래탑을 쌓았다 부셨다 수천번 한다면, 그야말로 쓸모없는 시간낭비다. 차라리 그 시간에 실컷 잠을 자는 것이 건강회복에 도움이 된다.누구에게나 쉬운 삶은 없다. 힘들수록 위기가 왔을 때, 잠재능력을 개발하고 도전하는 것이 최고 인생을 살게 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