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3년이면 강산이……

2012-07-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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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려(웨체스터 지국장)


케네디 공항에 가서 한국일보를 받아 와서, 등사로 밀어 야채가게며 유학생들에게 우편으로 신문이 아닌 구문을 배달했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생각하면, 새벽이면 집 앞에 생생한 한국소식과 뉴욕 소식이 빼꼭히 들어있는 두툼한 신문이 배달 되어있는 것이 기적 같다. 아니, 지금의 글로벌 한인사회 전체가 기적처럼 보인다.
그러나 피와 땀이 없는 기적이 없듯이 그 동안 뉴욕의 한국 사람들의 밤낮없이 전개되어 온 이민 스토리로 신(新) 팔만대장경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20년 전, 문화부 기자로 메트로 노스 기차를 타고 다니며 동분서주 할 무렵, 내가 웨체스터에 산다고 하면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이 뉴저지와 웨체스터를 혼동하곤 했었다. 어딘지는 몰라도 하여튼 플러싱에서는 다리를 건너가야 하는 먼 곳이라는 곳이었다. 그 때 ‘웨체스터에 사는 한국사람들은 김치 안 먹고도 산다며?” 하는 소리도 들었다. 선망스런 비웃음이라고나 할까.


그 때 한인 주류사회에서 저 멀리 자리 잡고 있던 뉴저지는 LA한인 사회를 방불케 하는 한인 타운이 되었다. 그렇다면 웨체스터는? 10년씩 여러 번이 바뀐 현재 여기 웨체스터의 한인 사회를 새삼 생각해본다. 과연 어떤 모습인가?
30년, 40년 전, 여기 살고 있던 한인들이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한국식품점을 찾아 화이트스톤 브리지나 워싱톤 브리지를 건너다니던 이야기는 물론 웨체스터 한인사회의 전설이 되어 있다. H마트 덕분이다. ‘어제 한아름에 갔더니……’아직도 한아름 한아름 하는 웨체스터 올드 타이머들 식탁에는 온갖 김치들이 오른다. 교회 사교시간에 쓸 떡을 맞추고, 맛있는 한국 빵을 사오고, 싱싱한 횟감을 사온다. 멀리 이곳까지 신경을 써준 H마트에 진심으로 땡큐를 한다.

아직도 비교적 조용하기만 이곳에, 그래도 제 역할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한인 단체가 있고, 음악이라는 한 가지 목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합창단이 생기면서, 삼삼오오 끼리끼리 모이던 한인들이 이제는 ‘웨체스터의 한인 커뮤니티’라는 큰 덩어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것 같다.인터넷으로 신문을 보는 시대에, 큰 맘 먹고 시작한 한국일보 웨체스터 판이 3년째이다. 2009년도에, ‘오케이, 뉴스를 찾아 다녀보자.’ 했던 그 시절과 얼마나 달라진 모습인가.

웨체스터 강산이 3년 만에 변했다. 앞으로 3년 후면 어떤 모습일까?
차세대에 전해질 이민 1세대의 아름다운 흔적을 남길 이곳 웨체스터 한인 커뮤니티에 큰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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