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배 곯리는 무상급식

2012-07-18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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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A군은 요즘 부쩍 말랐다. 학교에서 거의 점심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담임교사가 “왜 밥을 먹지 않느냐”고 물으면 “다이어트 중”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음식이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부실하기 때문이다. 작년 서울시가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면서 재정 부담이 급속히 늘어났으며 이것이 부실 식단으로 이어진 것이다.
더 웃기는 것은 아이가 학교 식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엄마가 도시락을 싸 줄 수도 없다는 점이다. 모든 학생이 똑 같이 학교에서 주는 밥을 먹어야지 집에서 마음대로 음식을 가져다 먹지 못 하게 돼 있다.
아이에게는 제대로 된 밥을 먹이지도 못 하고, 돈은 돈대로 들고, 엄마에게는 아이 밥을 싸주는 자유를 박탈하고, 아이들 밥 문제만 아니라면 웃고 말 한편의 코미디지만 매일 점심을 굶는 아이들을 보면 그럴 수도 없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이것이 날로 심각해져 가는 한국의 아동 비만 문제 해결에 약간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무상 급식과 함께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2세 이하 영아 무료 보육도 문제가 심각하다.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재정이 고갈돼 쩔쩔매는 지자체가 하나 둘이 아니다. 제일 먼저 금고가 바닥난 곳은 한국 제일의 부자 동네인 서초구다. 중앙 정부가 부자 동네라는 이유로 지원액을 적게 주는데다 공짜라는 이유로 너도나도 신청하는 바람에 수혜자가 3배 늘었기 때문이다.

원래 직장에 나가는 맞벌이 부부의 양육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시작된 이 제도는 이제 전업 주부들까지 모두 이용하는 프로그램이다. 2세 이하의 아이는 친 엄마 손에서 키워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수많은 연구 결과가 있지만 이제 자기 손으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시대에 뒤쳐지는 사람 취급을 받는 세상이 됐다.

이 때문에 좋아진 곳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동네 식당이다. 집에서 아이를 보살필 필요가 없어진 주부들이 식당에 나와 함께 밥을 먹으며 친목을 도모하는 바람에 매상이 크게 늘고 있다. 각종 취미 교실, 미용실, 카페 등도 몰려드는 가정주부들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작년 오세훈 서울 시장이 소득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한 무상 급식을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며 이를 금지하는 주민 발의안을 들고 나오자 일부 야당은 “애들 밥 안 주겠다고 우는 어른은 처음 본다”며 그를 비웃었다. 그리고는 주민들에게 투표 거부를 독려해 아예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 하게 했다. ‘투표가 밥’이라며 독려하던 지난 총선 때와는 딴판이었다.

당시 여론 조사로는 투표함이 열렸더라면 전면 무상 급식안은 부결됐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됐더라면 A군처럼 배를 곯면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도 없었을 것이다. 오세훈 시장은 패배의 책임을 지고 정치판을 떠났지만 과연 누가 올바른 길을 걸었는지는 훗날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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