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07-17 (화) 12:00:00
크게 작게
사람은 참말로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신께서 내게 옷 한 벌 지어주셨다. 의심이라는 환한 옷,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잠을 잘 때도 벗지 않는다. 견고한 이 한 벌의 옷을 입고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신다. 나는 너를 의심한다. 잠들지 못하는 밤을 위해 의심이 내 등을 다독인다. 내가 너를 지키마. 편히 쉬어라. 어떤 평안이 광배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이고 전지전능하사 나를 보호하시며 한없이 사랑하시는 도다. 꿈속에서 나의 찬양은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 배화교도처럼 의심의 불을 조용히 밝히고 내 아버지마저 그 제단에 바치기로 결심한 어느 새벽, 당신도 내 의심의 눈길을 피할 수 없다고 고백했을 때 천둥과 벼락으로 인해 하얀 의심의 옷이 더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우대식(1965 - ) ‘의심’ 전문

---------------------------------------------------------------
화자는 의심이라는 옷을 보호막인 양 늘 입고 다닌다. 의심 속에서만 사람을 만나고, 일을 보고, 잠들 수 있다. 의심을 ‘나의 아버지이고 전지전능’하다며 신의 경지에까지 높이고 숭배한다. 시인은 의심의 늪에 빠져 자신의 존재마저 잃어버리는 현대인의 자기모순을 비아냥거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의심은 의심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실존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천둥과 벼락 속에서 의심의 옷이 더욱 하얗게 빛난다’를 비시적으로 다시 써본다. 의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김동찬 시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