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단체장이 되기 전에

2012-07-16 (월)
크게 작게
임경자(수필가)

언제부턴가 이곳 한인사회에는 ‘장’ 자 붙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10명쯤 모이면 8-9명은 틀림없이 어느 단체인지 속해 있고, 그 직책 또한 다양하다. 회장, 이사장, 사무장, 부회장,무슨 부장, 무슨 감사… 등등. 하도 많은 종류이다 보니 직책을 들어도 돌아서면 다 잊어버 리게 된다.

말이 잘 안 통하는 미국에 이민와서 숨죽이며 살다보니 우리가 서로 좀 추켜주고 알아주고 즐거운 기분으로 살자는 뜻에서 보면 그것도 분명 나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곳 미국 땅에 살고 있는 한인 50대 이후의 남성들이 한국적인 가부장적인 폼과 멋을 부려볼 수도 있고, 이국땅에서의 스트레스도 풀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맡은 단체와 직책을 감당하다 보면 자기 삶을 적극적으로 살 수 있고 사회에도 그들의 긍정적인 활동이 적지 않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이제 단체활동은 비단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엄마 손이 필요치 않을 나이가 되기 시작하면 여성들도 서서히 단체에 뛰어든다.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하여 아이 양육을 마치는 동안 사회도 변했고 발전했기 때문에 여성 자신들이 자기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기까지 혼돈과 갈등을 겪기도 한다.


어쨌거나 여성들도 장, 장, 장이 되어 활발하게 인생 후반부를 즐기는 것, 이 또한 건전한 시각으로 보면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그런데 올 초부터 방문하게 된 여성이 주로 모인 단체에서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여성들끼리 서로 만나고 알고 지내는 것에 저 사람은 남편이 누굴까? 몇 살이지? 자식이 몇이고 뭐하는 사람일까? 등등을 알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을 본다.

옛날에 어쩌고 저쩌고가 왜 필요한가? 이 나이에 인간적인 성장과 관계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될까? 이민 1세가 이끌던 단체는 다음 세대의 임원들이 못견뎌 한다. 세대 차이만이 아니라 생각의 차이에 엄청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세대들과 2세대는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운영과 효과적인 구조를 1세대로부터 배우고 난후 양쪽이 다 팽팽하게 맞서 이견을 주고받지만 결국 서로 포용하지 않으면 함께 갈 수 없게 된다.

우리에게 이민생활에 도움이 되고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단체는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과 시간과 능력으로 봉사할 단체장도 필요하다. 그러나 단체장이 되기 전에 자기 자신의 인격에 대한 점수를 스스로 따져 보았으면 좋겠다. 우선 자기 자신에게 먼저 시간과 능력을 할애하여 자기에게 먼저 봉사(?)하여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인격이 된 후에 단체의 직책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