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간의 존엄성

2012-07-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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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재옥(의사)

얼마 전 페루의 쿠즈코 근방에서 8명의 젊은 목숨을 앗아간 헬기 사고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더욱이 엉망으로 된 시신을 과도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도한 것은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방송에서 눈을 떼지 못한 이유는 이에 관한 새로운 소식을 기대하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우리의 기대와 달리 시신으로 고국의 가족 품에 돌아왔다.

분향소에서 “아빠, 아빠” 하면서 애처롭게 울부짖는 어린 딸, 오열하는 유가족들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마치 내 가족의 일처럼 가슴이 시려왔다. 그들의 장례식은 회사가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하여 마지막 인사를 하게 만들어 주었다. 가득한 화환이 한번 가버린 혼을 되돌려 줄 수 없는, 다시 못 올 이생과 끝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유대인은 장례식에 화환을 받지 않는다. 대신 암연구소로 헌금을 보내 달라고 한다. 쿠즈코는 해발 3600미터 고원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도시다. 한때는 잉카제국의 수도였다. 눈보라나 허리케인이 없는 태양의 도시다. 쿠즈코에서 산꼭대기 도시 마추피추로 가는 기차는 항상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맞은편 산등성이에는 유명한 하이킹코스가 있고 전 세계에서 몰려든 배낭족들이 줄지어 산행하고 있다. 그 사이로 살찐 산양들이 딩굴면서 풀을 뜯어먹고 있다. 평화스럽다. 별로 가파르지 않은 암벽에 부딪친 헬기의 잔해가 보인다. 왜 걸어 올라가도 되는 산길을 뭐가 급해서 헬기를 탓는지 알 수 없다. 아주 높은 산봉우리는 무인 비행기로도 탐사가능하고 인공위성으로도 속속들이 다 들여다 볼 수 있는데도 왜 불필요한 살인비행을 자행했을까. 단시간 내에 성과를 높이려고 빨리빨리 강행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번 참사를 보면서 사고 미연방지를 위해 몇 가지 생각해 본다. 1.정비상태가 불량한 헬기에다 그곳에 도착한 응급차량도 고물이었던 점 2. 조종사의 자질, 음주, 약 중독 3.암벽은 피해가야 하고, 일기가 불순하면 기다려야 하는 점 4.상사에게 잘못 보일까 말단 직원들이 할 말도 제대로 못한 점 등, 원인을 따지려고 들면 끝이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죽은 이들이 너무 가엾고 불쌍할 뿐이다. 마취의사는 수술환자를 잠재우고 깨어나지 않을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500만달러에 달하는 보험에 가입해 있다. 내가 월남전 참전 때 받았던 봉급 100달러에 비하면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금액이다. 전쟁터에서 헬기에 오를 때마다 거센 바람 때문에 몸이 날라갈듯 섬뜩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 헬기사건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공연히 생사람을 잡아놓고 억울하게 죽은 자에 대한 감사패, 공치사, 과대홍보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생명을 가벼이 여기고 돈만 밝히는 업체로 부터는 배상금이라도 제대로 받아내야 한다. 한 생명의 가치는 목숨에 대한 보험금이 아무리 500만달러 이상이라 할지라도 절대 돈으로 살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금액으로도 환산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생명이다. 그러므로 무시되지 않는, 값으로 계산 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무엇보다 우선 되어야 한다. 직장의 업무가 아무리 그들의 삶을 좌지우지 한다하더라도 생명의 고귀함을 뛰어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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