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코니 아일랜드

2012-07-06 (금)
크게 작게
민병임(논설위원)

가끔 미국에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다. 평소 집과 직장을 오가다 맨하탄에 가야 뮤지엄 거리나 소호, 첼시고 그 외 플러싱의 한국마켓과 한국식당을 가다보니 타주로 여행을 가야 넓은 미국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이번 독립기념일에는 브루클린 코니 아일랜드로 핫도그를 먹으러 갔다. 그곳에 가면 가장 미국의 색깔을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은 1세기 전에는 뉴욕의 호화휴양지였다지만 지금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소수계 이민자들이 전철을 타고 대서양 바람을 맞으러 몰려드는 해변이 되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가게 간판, 모래사장위의 가짜 야자수, 유치한 놀이기구들이 허름하지만 어쩐지 못살던 우리의 과거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곳에 사람들의 활발한 웃음소리와 음악이 있었다.


지하철의 종점인 코니 아일랜드역에서 나오니 바로 앞에 네이든 핫도그 가게가 보여 먼저 그곳에서 아침으로 핫도그를 사먹었다. 두어 블럭을 가로막은 도로와 인도에서 수십명의 사람들은 너도나도 선채 핫도그를 먹고 있었다. 가게 옆에 설치된 가설무대에서는 ‘네이든스(Nathan’s) 독립기념일 핫도그 먹기대회’ 가 준비 중이었다. 밴드는 신나는 음악을 라이브 연주하고 뙤약볕이 내리쬐는 무대 위에서는 선수들이 얼굴이 상기된 채 대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한인여성 소냐 토마스(한국명 이선경)는 10분만에 핫도그 45개를 먹어 작년의 우승 타이틀을 지키고 상금 1만달러를 탔다. “내년에 46세가 되니 목표를 46개로 세우겠다”는 소냐는 5피트 5인치 신장에 100파운드의 자그마한 몸집 어디서 그런 한민족의 은근과 끈기가 나오는 지 놀랄 따름이다.

남자부 우승은 조이 체스트넛으로 10분만에 68개를 먹어 5년째 챔피언 자리를 고수했다. 1916년 서프와 스틸웰 애비뉴 코너에 문을 연 이 집은 ‘네이든 핫도그’의 원조로 1916년부터 이 대회를 열고 있다. 이 날 4만명의 관중들은 선채로, 높은 곳에 올라가서, 무대가 안보이는 곳에서는 대형 전광판을 보면서 웃고 떠들었다.

선수들이 얼굴이 시뻘개져서 입에 묻은 찌꺼기도 닦지 못하고 한손으로 핫도그 집고 다른 한손으로 입안에 밀어넣는 모습에 사람들은 낄낄거리고 박수 치고 환호했다. 이태리, 러시아, 유럽인, 히스패닉. 흑인, 아시안, 이들은 시끄럽지만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미국의 현재를 보여주었다.

모든 인종과 민족이 뒤섞여 함께 독립기념일을 즐기고 있는 것을 보면서 미국의 역사는 이민의 역사이고 미국의 주인은 이들이라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계 어느 국가보다 많은 총 5,000만명이상의 이민자를 받아들였고 지금도 매년 70만명이상의 신규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오고 있다.

과거에는 ‘인종의 용광로( Melting Pot)’라 하여 수많은 인종이 고유 관습을 버리고 융해되는 미국인을 말했지만 요즘은 ‘다문화의 샐러드볼’이라는 말이 더 적절한 것같다. 다양한 민족과 인종들은 각자 고유문화 유산을 지키면서 서로를 인정하고 살고 있다.

초등학교의 인터내셔널 데이가 그렇다. 이 날 미국, 프랑스, 호주, 중국, 일본, 뉴질랜드, 인도, 아랍 등 출신국 아이들이 집에서 가져온 민속의상, 악기, 인형 들을 전시하고 학부모들은 고유음식을 만들어 학교로 가져온다. 한인학부모들은 한복과 고무신, 부채를 전시회에 제출하고 잡채나 김밥, 떡, 김치를 학교로 가져간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서로 풍습을 알려주고 화합과 단결로 가는 초석이다.
7월 4일은 미 역사상 가장 중요한 날이다 보니 시민권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문항 중 하나가 바로 이 독립기념일에 관해서이다.

1903년 한인 102명이 하와이에 첫발을 디디면서 시작된 한인이민역사가 109년이 넘었다. 핫도그 먹기대회 같은 지극히 미국적인 시합에 참여하는 한인여성도 있고, 이 땅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사는 한인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미국에서 수십 년을 살아도 손님 같은 기분이라면 진정한 주인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해 보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