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동과 북촌

2012-07-0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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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 (부국장대우/경제팀장)

몇 년전 한국에 나갔을 때 아이들과 함께 인사동에 간 적이 있다. 예전 한국에 있을 때 많이 지나다녔던 길이, 그동안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지 궁금했고 기대도 컸다.

개인적인 취향이기는 하지만 당시 찾아간 인사동의 기억은 예상과 크게 달랐다. 심지어 ‘이게 무슨 한국의 전통인가’라며 어처구니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예전에 한지와 먹물 냄새를 기억하며 찾아간 인사동은 ‘시장’ 같았다. 일본어로 호객하는 상인들, 국적 불명의 제품들, 한류 연예인들의 사진들, 퓨전을 빙자한 이상야릇한 먹거리들, 시끄럽게 울리는 아이돌들의 댄스음악 등등. 한옥에서 전통차를 마시며 붓글씨와 산수화를 보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은 완전히 사라졌다.


물론 지금도 저마다의 특색을 갖춘 공예용품과 고미술품점 등이 늘어서 있고, 갤러리들도 많아 개성있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또 골목속으로 들어가면 전통 식당과 찻집, 생활 미술품상점 등이 많이 모여 있어 인내심을 갖고 찾는다면 좋은 모습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감상들은 복잡한 시장터같은 길거리와 시끄러운 댄스음악 등에 묻혔다.

얼마 전 한국에 갔을 때는 삼청동쪽에서 식사를 할 일이 있었다. 창덕궁과 경복궁 사이에 있는 이 지역이 흔히 말하는 ‘북촌’이다. 오랜만에 찾아가서 전반적인 길거리의 기억은 희미했지만 우선적으로 눈에 띈 것은 정독도서관이었다. 학창시절 정독도서관의 추억도 새삼스럽지만 그당시 지나쳤던 길거리가 이렇게 바뀌었구나 하며 새삼 되돌아보게 됐다. 골목 곳곳에 있는 화랑과 골동품 매매 상점, 깔끔해보이는 식당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지도를 보니 인근에는 운치 가득한 가회동 한옥길이 있고, 한옥마을, 전통 박물관들이 자리잡고 있다.

현재 북촌 일대에는 900여채의 한옥이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고관대작들이 살던 대규모 한옥은 거의 사라졌고, 중소 규모의 한옥들이 들어서 있다. 주말이면 이 지역에는 외부의 관광객들이 대거 몰려와 한국 전통의 풍취를 즐기고 있다. 북촌의 인상이 길게 남은 것은 무엇보다 아직 상권의 모습이 덜 강조된 탓이다. 전통공방과 카페, 갤러리들이 계속 들어서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길거리는 깨끗하고 덜 소란스럽다. 한국 전통의 느낌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갑자기 인사동과 북촌의 기억을 돌아보는 것은 뉴욕의 한인타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한인타운으로 꼽히는 맨하탄 32가 한인타운은 앞으로 10년, 20년뒤 어떤 모습일까. 최근 한류 열풍과 함께 한인타운을 찾는 미국인들이 계속 늘고 있다. 금요일이나 토요일 저녁에는 식당이나 주점 등에서 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다. ‘코리아웨이’로 명명된 이 거리는 뉴욕시의 관광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맨하탄 한인타운은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해롤드스퀘어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등 대형 명소들이 인근에 있고, 타임스스퀘어도 걸어서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지난 수년간 미국의 심각한 불경기속에서도 한인타운은 여전히 장사가 잘 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꾸준했다. 그러나 한인타운이 그동안 성장해온 것은 단순히 지리적인 위치가 좋아서거나, 이곳의 한인들이 유독 장사를 잘해서는 아닐 것이다.

한인 2세들이, 미국인들이 한인타운을 찾는 것은 그곳에 한국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맛을 즐기고, 한국과 관련된 각종 제품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들어 아쉬운 것은 한인타운이 한인타운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한인타운의 특성이 점차 사라진다는 느낌이다. 한인타운에 일식 주점들이 들어서고, 카페와 빵집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얼마전 차이나타운처럼 한인타운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만들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지금은 조용해졌다.

한 블록밖에 되지 않는 좁은 곳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한인타운이라는 특성이 희미해진다는 느낌은 감출 수 없다.
한국의 인사동이 가지고 있는 전통의 모습이 사라지면 결국 인사동도 희미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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