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모임은 에너지의 샘

2012-07-0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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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던 지역의 논바닥이 갈라졌다. 오랜 장마로 나무 밑동을 감싸던 흙이 무너져서 앙상한 뿌리가 햇볕에 말랐다. 그늘에서 자라던 화초가 꽃도 피우지 못하고 시나브로 시들었다. 나무의 성장을 돕는 햇볕, 흙, 물 중 어느 하나가 부족해도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사람은 어떤가. DNA, 환경, 교육이 제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건강한 성장을 이루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오랜 기간이 지난 후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에 그 영향을 잊기 쉽다.

여름방학은 학생들의 세상이고, 학부모들의 힘에 겨운 나날이고, 교사들의 재충전 시기다. 삼자가 서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나날을 보내다가, 두 달이 넘는 이 기간은 각자의 독립적인 자습기간이 된다. 이 자습기간의 계획을 잘 짜면 또 다른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열린 교육기간이 된다. 학교 교육이 틀에 꽉 짜였다면, 방학 동안은 선택이 자유롭고 헐거워 지내기 편한 교육 실습을 할 수 있다.


교사들의 여름방학은 마음껏 심신을 보강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각종 연수회가 열린다. 가르치던 사람이 배우는 자리로 옮기는 일은 즐겁다. 마음을 열고 동료들의 강의를 듣거나, 함께 토론하면서 학생으로 돌아가는 일은 업무에 시달리던 마음을 순화한다. 동업자의 체험과 지혜는 앞으로 할 일들에 기쁨과 용기를 준다. 그래서 연수회의 마감시간은 참가자들의 얼굴에서 편안하고 만족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미국에서 한국학교를 세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기 시작한 지도 어언 반세기에 가깝다. 지금은 한국학교라는 말이 보통명사가 되었고, 그 수효의 팽창과 함께 학생들이 다양성을 띠게 되면서, 한국문화를 알리는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현실에 만족하고 연구를 중단한다면, 한국학교의 쇠퇴를 의미하고, 거기서 거두는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피곤한 나날이 계속될 뿐이다. 학교의 존속만으론 뜻이 없다.

그런데 다행이다. 어리고 젊은 교사들에게 열의가 보인다. 연수회 출석률, 강의를 듣는 태도와 눈빛 등이 한국학교의 앞날을 보여준다. 일의 시작도 어렵지만 현실을 유지 발달시키는 과정 또한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성을 쌓기보다도 성을 지키는 수성이 어렵다고 주의를 환기한다.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이다. 학교는 하루하루 새로움이 추가되길 바란다. 새로움이란 커리큘럼의 내용이나, 교육방법의 쇄신을 뜻하며, 이것을 이루는 교사들의 연구가 이어져야 하는 이유이다.

우수한 한 사람의 생각보다, 보통사람 세 사람의 의견이 다채롭고 새롭다. 한 사람이 하는 일의 추진력보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는 추진력이 강하다. 혼자서 열 걸음 앞으로 걷는 것보다, 열 사람이 손잡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가는 편이 일의 성취도를 높인다. 그래서 모임이 있다. 모임의 모습이 때로는 잡다하고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다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전체주의가 질서 정연하게 보이지만, 개인의 욕구와 거리가 있는 겉치레일 뿐이다. 학생들의 모임이 시간의 낭비로 생각되지만 모임을 거듭하는 동안 그 과정이 점점 세련된다.

모임은 성장의 에너지이고, 비타민이다. 모임에서 우리는 새로운 친구, 아이디어, 추진력, 성취감, 미래까지 찾게 되고 힘차게 일터로 나갈 수 있다. 모임의 범위가 크고 작은 것은 문제가 아니다. 작은 모임도 세계적인 모임의 발단이 될 수 있고, 큰 규모의 모임이 성과를 올리지 못할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모임이 향한 목표의 크기다. 한국교사들이 연구모임을 지키는 까닭은, 다음 세대를 미국에 옮겨 심은 그 2세들의 미래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여름동안 교사들이 새롭게 성장하면, 여기에 따라 학생들도 신선함을 만끽하는 행운을 누린다. 교사들의 연구 모임은 학생들의 미래를 향한 영양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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