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사회의 잘못된 약 문화

2012-06-29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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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학에 ‘플라시보(Placebo)’라는 약리이론이 있다. 쉽게 말하면 ‘심리효과’ 라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두통이 있는 사람에게 ‘매우 훌륭한 약’ 이라고 강조하면서 밀가루로 된 알약을 먹여도 40% 이상의 환자가 두통이 나아졌다는 보고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심지어 복강 속에 있던 종양도 ‘어떤 신비로운 나무에서 얻어낸 약’이라고 환자에게 속이고 그냥 순수한 식염수에 약간 색소를 넣어 매일 정맥으로 몇 주 동안 주사하면 암 덩어리가 일시적으로는 작아질 수도 있다고 되어 있다.

서양 의학에서 ‘약의 효과’를 검증하는 과정을 보면 정말 놀랄 만큼 철저하다. 한 예로 지금도 널리 쓰고 있는 결핵약인 스트렙토마이신이 수십년 전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졌을 때, 최종적으로 남은 약 5,000개의 비슷한 화학구조를 가진 화학물질들 중에서 가장 효과 있고 가장 부작용이 적은 것 하나를 골라낸 것이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식약청(FDA)으로부터 약의 효과에 대해 인증을 받으려면 엄청나게 많은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의약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제약회사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재정을 사용해야 까다롭기로 유명한 식약청의 기준을 통과한다. 그것도 미국의 약들이 비싼 이유 중 하나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약들을 수입한 다른 나라들에서는 약값이 상대적으로 매우 쌀 수가 있다. 현재 한인 언론매체를 통해 선전하는 한국산 약들 중 식품허가를 받은 것은 많으나, 약의 효능 면에서 승인 받은 약은 얼마나 되는 지 알 수 없다.

요즈음 신문과 TV를 보면 한국에서 만든 약물들 선전이 많은 데 의사로서 듣기에 매우 거북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부작용 없이 중풍과 치매를 치료하는’ 약이라고 하며 매우 비싸게 값을 매긴 약들을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선전하고 있다.

만일에 그 말이 사실이라면 중풍을 전공한 필자의 의견으로는 그 약을 만든 사람이나 단체는 노벨상을 적어도 세 개 이상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 외에도 온갖 약물들을 아무런 가책 없이 마구 선전해서 한인 환자들을 유혹한다.

그런데 이런 약들은 가격도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필자가 알아본 결과에 의하면 대부분이 미국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 경우도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 약들 중 소위 한국의 대학병원에서 제조했다고 하는 제품들은 일단 큰 해는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효능에 대한 선전은, 중풍을 전공한 필자로서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필자의 환자들 중 그런 약들을 과신하여 낭패를 본 분들이 간혹 있다. 필자가 처방했던 중풍 예방에 도움을 준다고 승인된 약들을 다 끊고 그런 약들을 복용하다가 중풍이 와서 고생하시는 분들을 때로 본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또한 그 값이 싸지도 않은 약들을 사드리지 못 하는 자녀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 약의 효능이 공인된 기관에 의해 입증되지 않은 약들은 결코 전문인 상담없이 복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어떤 경우라도 환자들은 주치의가 처방했던 약들을 절대로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한다.


박성은/ 신경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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