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산소같은 사람들

2012-06-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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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주필

오랫동안 지구촌을 옥죄고 있는 경기침체 속에 생계유지를 위한 돈벌이에 벼라 별 수단이 다 동원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한때 아시아지역에서 성행했던 장기밀매 시장이 이제는 그리스나 스페인 등 유럽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장기 외에 머리카락이나 정자를 팔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등장했다. 장기를 매매하다 적발되면 장기간 복역해야 하는데도 이런 정도면 지구촌의 경제난이 어느 정도 심각한 지를 충분히 가늠할 수가 있다.

사기행위도 기승을 부리면서 최근 중국에서는 한국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우선 입국비자’를 발급해주겠다고 꼬드겨 거의 2,000명이 한국에 들어올 꿈에 부풀어 직장을 그만 두고 집도 팔면서 노숙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가짜 대통령 위촉장 한 장에 피해자들은 돈을 갖다 바치고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었다. 이들 중 160명은 노숙자 신세로 전락했다.


한국에서는 생명보험금을 타기 위해 부모, 형제, 혹은 배우자를 죽이는 것은 보통이고 심지어는 살아있는 가족을 8년이나 가두고 죽은 사람처럼 위장했다.
미국에서도 생계형 절도를 포함 온갖 사기행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좀도둑들이 도로의 맨홀 뚜껑을 빼가는 바람에 시 정부에 160만 달러의 손해를 입혔다. 쓰레기는 물론 식용유 찌꺼기까지도 훔쳐가고 있다. 한인사회에서 성행하는 주식 및 부동산 투자나 이민관련 사기는 이미 오래된 수법이다. 정부 생계보조금 SSI도 액수를 더 올리기 위해 ‘위장별거’나 ‘허위주소 기재’ 등 편법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살기가 갈수록 힘들다 보니 주변에서 허탈하고 우울한 소식들만 들리는 듯하다. 가뜩이나 경제전망이 희미한 상황에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주위가 어둡고 험난할수록 우리에겐 희망이 필요하다. 우리의 가슴을 훈훈하게 해주는 감동이 필요하다. 희망과 감동은 내일을 위한 힘이요, 가파르고 굴곡진 지금의 이 세파를 이겨나가는 원동력이다.

혼탁한 세상에서 그나마 숨 쉴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우리에게 신선하고 맑은 산소를 공급하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골수나 장기를 기증하는 대열에 참여하는 자그만 마음과 마음들이 모여 내 주변과 사회를 밝고 아름답게 장식해 나갈 수 있다. 아름다운 삶은 결코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는다.
이를 잘 설명해주는 영화가 있다. 골수기증에 관한 계몽을 위해 한인형제가 설립한 ‘주빌리 프로젝트’ 제작 다큐멘터리 ‘픽처 퍼펙트(Picture Perfect)’이다. 시간이 7분밖에 안 되는 이 영화가 지금 한인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유튜브에 올라온 지 하루만에 5만여명이 조회했고, 그 뒤 트위터, 페이스북 이용자들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만든 단체의 조그마한 활동이 시한부환자 생명 살리기 운동에 불을 지피고 있는 것이다.

암 환자에게 용기를 주고 회복을 돕고자 암센터가 개최하는 기금모금 프로그램 ‘수선화의 날’ ‘희망의 여정’ 등에 동참하는 손길은 우리 사회에 밝고 맑은 공기를 가져다주는 신선한 청량제와도 같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발로 뛰는 재소자들의 희망전도사 이상숙 뉴 패밀리 앤 포커스(New Family & Focus) 대표의 줄기찬 활동도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22년동안 왕복 네 시간-10시간씩 매주 두 교도소를 정기적으로 오가며 청소년 수감자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고 있는 이 전도사의 행보는 암울한 이 사회에 희망의 빛으로 다가온다.

말라리아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라이프네츠 파운데이션(LifeNets Foundation)’을 설립, 아프리카 소국 말라위로 날아가 희망 모기장을 설치해주는 알버트 유씨. 그의 말라위 사랑은 나날이 각박해져 가고 있는 이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을 돌보아야 할 교회조차 제살 찌우기에만 급급한 요즘, 특별한 감동으로 우리의 가슴을 파고든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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