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시 보는‘불꽃같은 예술인생’

2012-06-18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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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랭클린 리겔

평생 혼자 살다가 죽은 사람의 방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가? 그 사람이 평생 미술을 했던 아티스트였다면 어떨까?

지난 3월 오티스 미술대학의 교수 프랭클린 리겔(Franklyn Liegel)이 61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죽었을 때 그의 다운타운 로프트에 들어가 본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1,500스퀘어피트 남짓한 그 스튜디오는 사람이 헤치고 걸어 다닐 수 없을 만치 수많은 물건들로 뒤덮여 있었다. 작업 중이던 수많은 작품들 주변으로 가위, 풀, 성냥갑, 털실, 단추, 붓, 물감, 테입, 종이, 그림, 콜라주 피스 같은 것들이 모두 수천 수만개씩, 그것도 전혀 정리되지 않은 채로 쌓여 있는 광경은 거의 비현실적인 혼란이어서 처음 들어간 사람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고 한다. “사는 동안 갖게 된 모든 것을 단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개미처럼 쌓아놓기만 한 것 같았다”고 한 지인은 전했다.

앤드류샤이어 갤러리
21일부터 유작전
20년간 남긴 작품 소개


나는 그 스튜디오가 어지간히 정리됐을 때 한 번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방을 곧 비우기 위해 많이 치웠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충격적인 풍경이었다. 맨 처음 든 생각은 “이 사람은 사람으로 산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로만 살았다”는 것이었다. 하루 24시간 예술과 작품만을 생각하고, 호흡하고, 창조하고, 꿈꾸지 않았다면 그런 공간이 만들어졌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 물건들은 보통사람들이 보기엔 쓰레기더미였지만 프랭클린 리겔에겐 작품의 재료들이었다. 삶이 곧 예술이고 살아감이 곧 작업이었던 그에겐 주위에 널려 있는 모든 것이 작품거리였다. 그는 평범한 것들에 생명을 부여하면서 페인트와 드로잉을 접목한 아상블라주 형태의 입체적인 작품을 만들었는데, 색과 형태와 텍스처의 운용이 매우 자유롭고 창조적이다. 분명히 하루 종일, 아니 여러 날을 웅크리고 앉아 수백수천 번 만지작거렸음에 틀림없는 작품들은 평생 고독하고 폐쇄적이었던 그의 삶과는 달리 즐겁고 경쾌하며 리듬이 충만하다. 수많은 이야기가 담긴 화려한 뮤지컬과도 같고. 놀라움이 가득한 추상적 애니메이션과도 같다.

‘고요한 프랭클린 흥분한 프랭클린 아티스트 프랭클린’(Franklyn.calm Franklyn.excited Franklyn.artist)은 6월21일부터 7월7일까지 앤드류샤이어 갤러리(관장 메이 정·수잔 백)가 고인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유고전이다.

프랭클린 리겔은 이 갤러리가 2년에 한 번씩 기획했던 한미 중견작가 그룹전 ‘마인드 게임’에 매번 참가하며 한인 화단과 인연을 맺었으며, 지난 4월12일 개막됐던 제4회 ‘마인드 게임’을 앞두고 출품작들을 마무리하던 중 타계해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었다.

앤드류샤이어 갤러리와 동료 작가들의 노력으로 열게 된 이 유작전에는 고인의 최근작들과 함께 지난 20년간 창조해 온 작품들이 소개된다. 또한 스튜디오에서 발견된 콜라주 오브제들(8,000여개나 된다고 한다)을 이용해 동료교수, 작가, 학생 23명이 만든 추모작품들도 선보이고, 전시장에는 고인의 작업 테이블과 캐비닛, 작품 재료들을 일부 옮겨다 스튜디오 한 구석의 모습을 비슷하게 재현해 놓을 예정.
미니애폴리스 미술대학에서 BFA를, 오티스 칼리지에서 미술석사를 마치고 1979년부터 LA예술고교, 크로스로드 예술학교, 오티스, 아트센터 칼리지, USC에서 가르쳤던 프랭클린 리겔은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알았으나 교사보다는 작가로 알려지길 원했다. 30여회의 전시회에 참여했고 비평가들로부터 좋은 평도 받았지만 워낙 은둔형이라 작가로서 ‘성공’하지 못했던 그는 ‘작가란 무엇인가’를 생각게 하는 ‘진짜 작가’로 남게 될 것 같다.

오프닝 리셉션 21일 오후 6~8시. (213)381-2601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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