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버지들이 바라는 선물

2012-06-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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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자존심이 있다. 자존심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 혹은 자신에 대한 신뢰라 표현할 수 있겠다. 흔히 “자존심 상했다”라고 할 때엔 자신의 인격에 손상을 입었을 때를 말한다. 그러니 자존심과 인격은 길을 함께 가는 친구 같은 사이이다. 인격적으로 존중을 못 받거나 멸시를 당할 때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아버지 하면 한 아내의 남편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다. 자식들에게는 ‘부모(父母)’라고 불리는 ‘부’에 속하는 사람이다. 이런 아버지가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가족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심하면 멸시까지 받는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돈이 가치를 대변해주는 지금, 가장의 중요한 역할은 돈과 연관된다.


1997년 한정수작가가 발표한 <아버지>란 소설이 있다. 아버지의 고독과 가족의 화해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 한정수는 돈을 많이 못 벌어다 주는 공무원으로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자식들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집안은 냉랭하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가정의 화목을 위해 노력하지만 제대로 되질 않는다.

산 넘어 산이라 했던가. 아버지는 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이 된다.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은 한정수는 가족 사랑에 남은 힘을 몽땅 쏟아 붓는다. 이러한 아버지의 가족사랑에 친구들이 보다 못해 가족들에게 아버지가 시한부 인생임을 알려준다.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은 아버지와 함께 마지막 여행을 함께 떠나며 사랑을 확인한다.

이 소설은 돈 보다도 사랑이 더 중요함을 말해준다. 돈이 최고가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가정의 화목은 물질이 아니라 사랑에서 시작됨을 알게 해 준다. 넉넉하게 벌어다 주지 못하는 가장이 된 아버지들의 아픔은 아버지가 돼 보아야 안다. 그것도 가난한 아버지다. 가엾은 아버지의 마음을 가족들이 알아주지 못하면 누가 알아주겠는가.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란 표어를 걸고 진행하는 아버지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아버지들에게 자존감을 불어넣어주고 상처받은 아버지들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갖고 있다. 아버지학교에서 쓰는 사명선언문엔 “아버지는 순결을 지키고 매일 아내를 격려하고 자녀를 축복하며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간의 우애를 지킨다”등의 내용이 있다.

그렇다. 아버지가 먼저 살지 않으면 집안은 힘들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먼저 순결해야 하고 아내를 사랑하며 부모를 공경하여 자녀에게 그 본을 보여주어야 한다. 반면에 가족들은 아버지의 능력이 부족하다 해도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말고, 기를 살려주어야 한다. 아버지는 집의 기둥이기에 그렇다. 기둥이 무너진 집은 어떻게 될까.

얼마 전 암으로 세상을 달리한 강영우박사는 참 좋은 아버지로 살다 간 것 같다. 연상의 여인을 아내로 맞아 그의 보살핌을 받은 강 박사. 아마도 아내의 내조 때문에 박사도 되고 높은 자리에도 올라가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그는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는 그런 역경을 모두 이겨내고 한인 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철학박사(Ph.D.)를 받았다.

그의 아들들도 아주 훌륭한 이민 2세가 되어 있다. 한 아들은 변호사, 한 아들은 의사다. 강영우박사 가정이 이렇게 잘 된 것은 앞을 못 보는 아버지에게 온 가족이 힘과 용기를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장애를 가진 아버지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고 오히려 그를 북돋으며 그를 인도한 두 아들과 그들의 어머니가 그를 성공시켰다 본다.

아버지가 되는 것은 저절로 된다. 자식만 낳으면 되니까. 그러나 아버지의 길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멀고도 험난하다. 가정과 사회, 안과 밖에서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버지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가족들을 만족시켜주지 못할 때, 밖에서 시달렸는데 가정에서도 인격적인 대우를 못 받을 때 아버지는 외롭고 쓸쓸해진다. 세상엔 어머니에 대한 찬사와 노래는 많아도 아버지에 대한 찬사는 드물다. 왜 그럴까? 아버지는 아버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남자다. 남자는, 남자란 자존심이 있다.

내일이 아버지날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자식들이여! 아버지에게 용기와 희망의 선물을 주라. 지금도 쓸쓸히 밖으로만 돌고 있을 아버지들이 있다. 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가족들이 주는 사랑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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