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좋은 아버지

2012-06-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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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오는 17일은 파더스 데이(Father’s Day)다. 미국에서 태어난 2세보다 1세나 1.5세들은 문화적 차이 탓인지 어머니날에 비해 아버지날은 다소 소홀하게 대하는 것같다.

한국에서의 아버지는 밖에 나가서 일하는 사람, 돈 버는 사람이지 자녀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거나 가족과 친밀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뉴욕이민사회에서 아버지는 어떤 존재일까,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자녀들은 얼마나 있을까. 한국에서는 강하고 당당하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던 아버지가 미국에 와서 살면서 의기소침한데다가 어깨가 축 처진 채 자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처음 이민 와서는 뭐든지 잘해 낼 것 같았지만 점점 언어의 장벽은 높아만 가고 마땅한 직업도 없고 자녀에 대한 기대치는 높아만 가는 아버지, 혹은 직장 스트레스가 높다보니 자녀를 보면 잔소리부터 시작하는 아버지, 늘 한국TV만 보는 아버지로 이미지가 굳혀지지는 않았는가. 물론 드물게는 “아버지 같은 사람이 없어서 남자친구를 사귀지 못하겠다”는 딸도 있다. 이런 아버지는 자녀의 갈 길에 대해 함께 의논하고 같이 박물관에 가며 문화행사에 참여한다.

존경받는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일까.
역사적인 인물로, 아들의 의식을 일깨워줘 인종차별에 대한 백인의 생각을 바꾸고 인권을 위해 노력한 마틴 루터 킹의 아버지가 있다.
파더스 데이의 기원이 된 참전용사 윌리엄 스마트, 워싱턴주 스포케인에 사는 딸이 1909년 6명의 자녀를 혼자 키운 아버지의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 이 날을 만들었다고 한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아버지도 있다. 방탕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아들에 대한 주위의 비난에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이는 아버지, 두 팔 가득 벌려 돌아오는 탕자를 맞는 늙은 아버지는 감격스럽다.이처럼 위대한 인물까지는 못되어도 이 땅의 아버지들은 적어도 자녀에게만은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한다. 그 어떤 상보다도 ‘좋은 아버지상’이 있다면 그 상을 받고 싶을 것이다.

다행히 주위의 이민가정을 둘러보면 빈틈 많고 못난 아버지, 실패한 아버지, 지친 아버지, 투병 중인 아버지라도 자신의 아버지이기에 사랑하고 존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누군들 가정의 버팀목이 되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싶지 않았으랴, 한국에서보다 열배이상 노력했지만 늘 벼랑 끝에 선 채 버텨나가고 있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손을 내밀어 함께 하는 자녀들이 많다. 그런 상황 속의 한 아버지가 있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2분 원폭이 투하된 나가사키, 한발의 폭탄이 당시 인구 24만명이던 이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다. 나가이 박사는 낙하 중심지에서 불과 700미터 떨어진 나가사키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다가 폭탄이 터지는 섬광을 직접 보았고 옆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불타 숨져갔다. 집에 있던 아내도 숨졌다. 그도 원폭을 맞아 동맥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어 투병 중에도 피폭자들을 치료하면서 원자병이라는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그에게는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었는데 피난 갔던 아이들은 다행히 피해를 입지 않았다. 죽음을 예감한 그는 고아가 될 아이들을 염려하면서 글을 썼다.
그때 쓴 글 ‘나가사키의 종’, ‘묵주알’, ‘이 아이들을 남겨두고’, ‘사랑하는 내아이들아’ 등은 일본 국민 뿐만 아니라 전세계인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하루라도, 한 시간이라도 더 살아 아이들이 고아가 되는 시간을 늦추지 않으면 안된다. 죽는 것을 일분일초라도 늦추어 아이들이 슬퍼하는 시간을 줄여주지 않으면 안된다”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걱정이 명작을 만들었고 그는 원고 수입의 대부분을 원자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 그는 1951년 마흔 세 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자녀 걱정으로 스스로 시한부 생명까지 늦추고 간 그는 자녀를 끝까지 책임진 아버지였다. 자녀를 둔 아버지, 아버지를 둔 자녀는 행복하다. 좋은 아버지가 될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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