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명품 가운데 하나가 자타가 공인하는 인천공항이다. 7년 연속 1등을 독점하는 바람에 유럽공항들의 반발이 거세어서 내년부터는 상 자체를 없애 버린다고 한다. 코리안 모두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최근 민주 평통 제15기 해외지역회의 참석 차 서울을 방문하면서 보니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있다. 인천공항에 걸려있는 영문 표지판들 중 영어를 국어로 하는 사람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단어가 하나 둘이 아니다.
표지판에 쓰는 표현은 기본적으로 자주 쓰이고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되는 말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사전에서는 볼 수 있으나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는 표현은 삼가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입국 시 통과하는 여권심사관 앞에 쓰인 ‘대기선(Please Queue Here)’을 표시하는 표현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 국민들 가운데 ‘Queue’란 단어를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필자와 동행한 미국인 2명은 ‘Queue’란 단어가 바로 옆의 ‘대기선’이라는 한글만큼이나 생경하다고 했다. ‘Please’도 필요 없이 ‘Stand Here’라고 하거나 ‘Form Line Here’라고 하면 될 것이었다.
다른 예는 출국장 복판에 걸려있는 표지판이다. 한글로 ‘인천공항세관 출국검사관실’이고 옆에‘Departure Goods Control Division’이란 영문표기가 있다.
필경 담당 부서 직원이 우리말을 한 단어, 한 단어를 아주 ‘충실하게’ 사전을 찾아 영문으로 바꾸어 놓았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코레일이 발행하고 있는 전철 지하철 전용 1회용 교통카드의 영문이 가관이다. ‘single journey ticket’이라고 쓰여 있다. 1~2 시간 가는 길을 거창하게 ‘journey’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장거리 여행 혹은 인생여로를 은유적으로 표현할 때 쓰는 단어이다.
콩글리시의 극치라는 생각에 주변의 여러 미국인들에게 ‘자문’을 구해 보았다. ‘Departure Goods Control’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고 모두가 ‘single journey ticket’ 이라는 표현에 거북해했다. 그들은 ‘Departure Inspection Division’‘single ride ticket’으로 쓰면 좋았을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길 이름표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종로 4~5가 사이에 ‘동순라길’이라는 표지가 있다. 이 경우는 한국사회의 커다란 사회적 이슈인 한자 병기와 그 맥을 같이 하는 이야기가 되겠다. 울산근처 고속도로 진입로 표지에 있는 ‘서울산’이나 강원도 가는 길에 있는 ‘남양주’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면 ‘東巡邏’ ‘西蔚山’ ‘南楊州’라고 써 놓아야 옛 ‘경찰’들이 순시하던 길이거나, 울산의 서쪽지역 또는 양주의 남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한글로만 써 놓으면 어디에서 끓어 읽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끊어 읽지 못하면 뜻을 알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다.
현재 미주에서 방영되고 있는 대하드라마 ‘광개토대왕’도 마찬가지다. 외국인들을 위해 영문자막으로 ‘King Gwanggeto’라고 쓰여 있지만, 한자로 ‘廣開土大王’으로 쓰면 이름 만으로도 그 왕이 어떤 업적을 세웠구나 이해될 수 있다. 한자 안에 뜻이 모두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한글 전용론자들은 차세대들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시민이나 시청자가 모를 것이라며 한자를 쓰지 않는 언론매체들 또한 문제가 있다.
우리말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한국의 학생들이 영어교육을 위하여 영어권 국가로 조기 유학을 떠난다. 조기 유학이란 단어가 일반화된 지도 벌써 20년이 가까워진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관문으로 자리 잡은 인천공항의 영문표기도 영어답지 못하고 관광객 유치 천만을 목표로 하는 국제도시 서울의 지하철카드 영문표기도 거북하기 이를 데 없다. 더구나 조상들의 함자를 쓰기는커녕, 읽지도 못 하는 문맹 양산의 교육현장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한태격 /뉴욕 평통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