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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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방인숙의 서유럽 여행기 (10) 이태리 밀라노(밀란)편

2012-06-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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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방인숙의  서유럽 여행기 (10) 이태리 밀라노(밀란)편

밀라노 두오모 앞에서

버스는 프랑스와 국경인 몽블랑터널을 정점으로 조금씩 하향곡선으로 달린다. 버스는 계속 산 밑의 계곡을 끼고 달린다. 계곡물이 빙하 녹은 물이라 맑다 못해 청색 빛이더니, 이태리마을로 근접할수록 생활오수 탓인지 뿌예진다. ‘불편한 진실‘로 내 마음도 뿌예진다.

네 시간 정도 달리니 이미 날은 저물고 빗방울까지 돋는데 밀라노란다. 인제 일행 중 5명은 내일 아침에 귀향이고 뉴욕에서 온 세 명이 새로 합류한단다. 비 오는 날 밀라노광장에서, 가이드님과 새 일행인 3명과 상견례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세상에! 우산을 나란히 쓰고 있는 부부가 여고후배내외분이 아닌가. 극적인 재회는 드라마나 영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에, 우연의 만남 가능성을 확인한 사실에, 살맛나는 기분이다.

가이드님이 대뜸 “명품의 고장에 오셨는데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명품은 뭘까요?”하며 말문을 텄다. 명품들의 이름을 머릿속에서 굴리느라 눈들만 똥그래졌는데, 정답은 ‘이태리 타올’이란다. 한국인들끼리만 통하는 유머라 순간적으로 전이되는 결속감에 모두들 까르르 웃었다. 그런 다음 달변의 가이드께서 준비된 안내 설명으로 들어갔다.


옆에 왕관처럼 뾰족뾰족한 날카로운 첨탑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는 건물이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이다. 450년이나 걸려 건축된 하얀 대리석건물은 135개의 첨탑과 벽면에 새긴 부조들, 첨탑마다 2245개나 되는 성자와 순교자들의 동상이 서 있다. 까마득히 높은 데서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 서있는 조각상들이 고독하고 추워만 보인다. 중앙의 제일 길고 높은 첨탑위엔 황금색의 성모마리아상이다. 무거운 대리석 동상들이 원형이나 사각형도 아니고 동작도 다 다른데 어떻게 균형을 잡고 붙어있는 걸까? 돌이니 접착제도 아닐 거고, 심지어 어떤 조각상은 두 팔도 아닌 한 팔로 물구나무를 선 것도 있다니 불가사의다.

단테의 거리를 건너니 입구가 개선문인, 세계 제일 아름다운 쇼핑가라는 빅토리아 임마누엘2세 아케이드<갤러리아>다. 유리로 된 아치형 천장이 높고, 바닥은 다양한 색의 대리석에다 한국의 천장도배지 문양을 살렸다. 신발을 신고 딛는 게 미안할 만큼 예쁘다. 두 회랑의 교차지점에 모인 사람들이, 전부 야릇한 웃음기를 머금고 있다. 재미있게도 대리석바닥에 모자이크된 황소의 중요부분에 발을 대고 두 바퀴씩 돌면 소원이 성취된다나. 너도나도 어찌나 비비고 돌았는지 그 부분이 빤질빤질하고 옴팍 패였다. 소가 얼마나 아팠을까 싶어 주저됐지만, 내년에 태어날 첫 손자생각에 기어이 나도 돌고 말았다. 얼굴이 좀 뜨끔하다.

가이드님이 좀 떨어진 곳의 건물을 가리키며 ‘최후의 만찬’벽화로 유명한 산타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성당이란다. 예약필수에다 정예인원만 관람케 한다지만 직접 보지 못해 애석하다. 플라톤이 ‘행복의 조건은 부족하고 채워지지 못한 겸허한 생’이라했다. 여행도 당연히 한 번에 다 채워질 수 없는 거고, 그럼에도 지금 나는 행복하니까 됐다.

이슬비를 맞으며 식당으로 갔다. 본고장 특색인 껍질이 얇고 바삭한 피자와 깔끔한 스파게티다. 좀 전에 재회한 후배부군께서 우리 테이블로 와인 한 병을 보내주셨다. 와인 덕인지 비 내리는 밀란이 더 로맨틱하게 다가온다.
숙소인 N. H호텔이 여태껏 숙소 중 제일 최신식이다. 실은 밀란으로 오기 전 버스 안에서 이미 이 호텔을 관심 있게 찜했었다. 새까맣고 네모난 현대식 쌍둥이 건물이 삐죽이 솟구쳤는데, 특이하게도 피사의 사탑마냥 갸우뚱 기울어져 눈에 띄었다. “제게 뭐지? 쓰러질 것 같네.” “N. H라고 써있으니 회사건물인가?”하면서 유하고 얘기를 했었다. 그런데 그 건물은 호텔이었고 몸소 묵게까지 될 줄이야. 예상 못한 이런 우연의 일치야말로 세상사는 맛이다.

산책하려고 이른 새벽에 커튼을 살짝 들춰보니 아직도 ‘이슬비 내리는 정원’이다. 고즈넉이 서있는 연못가의 단풍나무들, 달무리인양 안개에 폭 싸여있는 까만 무당벌레 가로등, 두 개의 큰 연못엔 세 개의 키 다른 제트분수가 보는 이도 없는데 물을 뿜고 있다. 너무 로맨틱한 정경에 또 목이 메어온다. 다정한 친구들과 함께한, 이런 행복한 시간을 내게 선사해준 애들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이 사무치게 다가와서다.

우중에, 밤에, 짧게 만나본 밀라노! 내게는 ‘그래도 못다 한 인연’인가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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