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교회와 값싼은혜

2012-06-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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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영(목사)

개신교가 한국땅에 들어온 지도 벌써 120년이 지났다. 토착종교인 무속의 풍토위에 파란만장하게 예수의 복음은 정착되었다. 회상하면 물론 평양성령운동같은 긍정적인 무브먼트도 있었지만 애서와 야곱처럼 “누가 장자냐?” 또 신신학, NAE, 에큐메니칼, 이념논쟁을 하며 삼분오열 칼싸움을 했던 어두운 면도 간과할 수 없다. 또 고린도 증상을 앓고 있는 어린고린도교회 보는 듯 안식일마다 몸은 성전에 앉아있지만 마음은 아직까지 영혼 잘되고 범사사업, 건강형통만 빌던 성황당때 기복신앙 그대로였다. 그건 마치 바울이 예루살렘에 있던 어떤 제자들을 지칭하며 신랄하게 비판하던 소위 ‘다른복음’ 같은 ‘값싼 은혜’와 같았다. 즉 유대교와 예수교에 양다리하고 있는 안전제일주의 그런 것이었다.

필자가 말하는 이 ‘값싼은혜’를 예수는 ‘가라지’ 비유에서 표현했지만, 15세기 때의 면죄부라던지, 한국의 부흥사경회때 흔히들 경험했던 잘못된 헌금 각출, 또는 형식적 성전숭배와 안식일 경배 따위다. 또 초창기의 미국선교사들의 신학색깔도 거의가 근본주의와 문자 성서해석 위주였고 자립교회 선교전략도 개교회적이며 물질주의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오히려 ‘값싼은혜’에 부채질한 격이 되었다.


한국교회가 100주년을 기념해서 지은 건물이 종로에 있는 100주년기념관이다. 필자도 한때 그 통합측 장자교단에 몸담고 있었지만 하루는 동료 L목사가 “새해엔, 저쪽 합동측에서는 200개 교회를 개척한다는데 우리는 적어도 300개 교회는 개척해야 되는 것 아니요?” 하며 제안했다. 나는 “목사님, 그렇게 인위적으로 선교 경쟁했다가는 향후 20년쯤 뒤에는 남한이 온통 교회로 가득찰 것입니다”고 농담했지만 그때 그 농담이 적중되어 오늘의 7만이 넘는 대 교계가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차제에 필자는 6.25로 분단된 조국의 교회에 바란다. 그 옛날 삼국통일은 신라의 임전무퇴 ‘화랑정신’으로 가능했다면 남북통일은 당연히 ‘예수의 정신’이라고. 조국의 7만 교회는 자신 있게 신앙 고백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 후 장신대 학장 이종성박사에게 “한국교회가 급성장하는 이유?” 를 물었더니 “그건 성령의 강한 역사요, 또 하나는 프러스 알파” 라는 애매한 답변을 들었다. 최근에야 느낀 그 프러스 알파란 실마리가 부정적인 요인으로 빙산의 일각처럼 떠오른다.

첫째로 비루한 물질주의가 한국교회의 급성장 물결을 타고 들어와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의 변질된 목회성공사레로 나타난다던지 또는 참회 없는 자기 용서만으로 성역으로 도피해온 세속직업주의가 개 교단 양적성장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경솔한 안수(按手) 딤전5:22. 라든지, 그 다음으로 개혁자들의 오직믿음, 오직은혜보다 교회성장 지상주의란 명분을 깔고 참 경건의 모습에서 변질된 소위 군중심리를 이용하는 ‘예수무대 감상주의’ 유행 등이 ‘값싼은혜’ 속에 희석되어 지금 한국교회는 누가복음 10장에서 말하고 있는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를 이해하려는 동생 마리아와는 대조적으로 예수선교를 빙자한 이기적인 ‘값싼은혜’란 메뉴로 식탁마련에만 분주히(눅10:40)뛰는 마르다를 보면서 한국교회상을 그려본다.

‘교회의 대 원수는 값싼은혜’ 라고 지적한 바 있는 본 훼퍼는 어쩌면 한국교회를 의식하며 한 말은 아닌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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