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비의 실종

2012-06-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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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교육가/수필가)

4,000년 이상의 한국역사 속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가치관의 덕목을 말하라면 나는 서슴없이 ‘선비정신’이라고 말할 것이다. 600여 년의 역사가 면면히 흘러 내려왔고, 500년 이상의 조선왕조의 체제를 유지하게 했던 이 선비정신을 흔히 영국의 젠틀맨 십, 미국의 프론티어 정신, 일본의 무사 정신보다 우월하다고들 주장한다. 전통사회의 선비는 그 사회의 양심이요, 지성이며, 인격의 기준이고 생명의 원기였다. 이 선비 사상의 청백(淸白), 근검(勤儉), 후덕(厚德), 경효(敬孝), 인의(仁義)의 다섯 가지 덕목 가운데 으뜸은 역시 청백과 근검이고, 조선의 청백리 (淸白吏)가 배출된 유래이기도 하다.

산수간 바위 아래 띠집을 짓노라 하니 그 모른 남들은 웃는다 한다마는 어리고 향암의 뜻에는 내 분인가 하노라. 보리밥 풋나물을 알마초 먹은 후에 바위 끝 물가의 슬카지 노니노라. 그 나믄 녀나믄 일이야 부를 줄이 이시랴. 우리가 잘 아는 고산 윤선도의 ‘산중신곡’의 ‘만흥’ 6수 중의 2수이다. 이 유명한 시에서 우리는 청백과 근검에 기초한 ‘안분지족’과 ‘안빈락도’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그 말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켜 만족함을 앎’과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며 지냄’이 두 유의어의 뜻풀이 인데, 이 풀이에서 ‘편안한 마
음으로 분수를 지킨다는 것이 우리 선인들의 지고한 생활 철학이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언제 부터인가 우리 선인들에게 생명력으로 면면히 이어오는 이 아름답고 귀한 선비사상과 안분지족의 생활철학이 잘 지켜지지 못하고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회의 산업화, 과학문명의 발달, 물질 만능주의가 되어버린 세태만을 탓하기에는 너무 설명이 부족함을 느낀다. 정말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도도히 흐르고 있는 선비정신이 실종이라도 되었다는 말인가.

서울 양재동 복합 유통단지 개발사업 시행사인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사건에서 대통령의 멘토였던 전 방송통신 위원장 최시중과 이상득 위원의 보좌관 이었던 전 지식 경제부 차관 박영준이 거액의 로비 자금을 받고 은행 감독원장과 청와대 민정 수석에게 전화를 걸어준 사건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요즈음 자고 일어나면 터지는 뉴스들이 우리의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다.

옛날 이샤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의 대결에서 통쾌하게 승리는 하였지만 이세벨의 보복을 피해 도피하는 그의 절망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아직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인을 남겨 두었다고 위로해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남겨 놓았을 것이다. 다만 그러한 일꾼을 뽑는 권력자가 먼저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하고 그런 사람을 잘 택해서 적재적소에 앉혀야 할 것이다. 우리 피 속에 선비정신의 DNA가 흐르고 있는 한, 선비사상과 안분지족과 안빈낙도의 지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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