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의 편지

2012-06-0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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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카드에 보낸 사람의 이름만 있으면 빈 그릇을 받은 느낌이다. 카드에 이미 인쇄된 글귀가 있지 않은가. 그렇더라도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말이란, 원 싸이즈 옷과 같다. 특히 ‘사랑의 편지’ 일 경우는 허전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도 편지를 안 받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라는 질문에는 아예 답하지 않겠다. 이런 섬세한 감정이 담기는 것이 사랑의 편지고, 주고 싶고 또 받고 싶은 편지다.

우선 그런 상대가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 사랑의 상대란 가족, 친구, 이성, 과거나 미래에 있는 사람, 먼 나라나 우주 공간에 있는 사람 등 광범위하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마음이 비어있는 느낌을 받는가. “아니요, 우리 엄마 아빠는 서로 사랑하지 않아요.” 한 어린 학생이 소리친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한 번도 키스하는 걸 못 봤어요. 서로 안아주는 것도...”


그래서 사랑의 표현이 필요하고, 편지 쓰기는 하나의 그 방법이다. 사랑의 편지는 상대방의 마음을 태울 만큼 뜨거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최근 차분한 옛 편지 한 장 때문에 감동하였다. 15세기 중반에서 16세기 전반 생존한 인물로 추정되는 함경도 경성의 군관 나신걸이 부인 신창 맹 씨에게 보낸 한글 편지는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어느 시대에나 사랑이 있고, 부부의 사랑은 아름답고, 상대방을 만나고 싶거나, 그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이 사랑이고, 그 마음 전하는 것이 편지이다. 그 여인은 이 세상을 떠나면서도 사랑의 편지를 곁에 두고 무덤 속에서 500년 동안 함께 지냈다.

편지 내용 중 “또 딸 낳더라도 서운해 하지 마소” 는 부부애의 극치를 이룬다. “분(粉)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는 그 시대를 반영한다. 즉 ‘바늘’ 이 수입품이어서 귀했던 시절임을 알린다. 여기에 연관되는 고고학자의 말을 빌리면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의 운명은 작은 도구가 갈랐다. 바늘이다.”어른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어린이들이 그것을 따를 이유는 없다. 어른들은 동양문화권의 영향을 받아서 마음의 높낮음을 조용히 가라앉히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 방법이 때로는 오해를 살 수 있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제 마음을 과장할 필요는 없어도, 있는 대로 표현하는 방법에 익숙해지길 바란다.
‘어머니날’ ‘아버지날’ 같은 특별한 날을 비롯해서 쓰고 싶은 날 자주 편지를 쓰게 한다. 그들은 “엄마, 사랑해요. 내 엄마 #1” “아빠, 사랑해요. 아빠도 나 사랑해요?” “아빠, 엄마 똑같이 사랑해요.”라고 쓰기도 하고 “엄마 좋아하는 목걸이를 드려요”라고 쓴 밑에 목걸이를 그린다. 부모에게 사랑의 편지 쓰기를 권장하는 이유는 그 과정을 통하여 자발적으로 깨달아 느끼게 하고 창의와 개발성을 기르기 위함이다. 또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여 멀리 사랑을 보내기 위한 방법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점점 자란다.

무엇이 사랑의 편지인가. 미사여구나 과장된 표현은 사랑일 수 없다. 솔직한 마음의 소리를 알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엄마, 아빠 보고 싶었어요. “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지금 같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예로 든 말들은 결코 특별한 말들이 아니다. 다만 상대와 건넨 시기가 다를 뿐이다. 깊은 뜻이 담긴 말이란 소박한 마음의 소리다.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울고 가네” 가족을 그리는 남편의 글에 구구 절절 애정이 흐른다. 옛사람들의 애정 표시는 잔잔하면서 마음에 스며든다. 현대의 애정 표시는 화려한 어휘로 과장된다.

무엇이나 희귀한 것이 보물이다. 소위 손글씨만 있을 때는 기계글씨가 좋게 보였다. 요즈음은 거의 모든 것이 기계화 되어서 손글씨를 보기 힘들다. 그래서 사랑의 편지는 어린이의 서툰 글씨나 펜으로 쓴 손글씨이길 바라게 된다. 누군가가 손글씨로 사랑의 편지를 보내오면 파란 하늘이 보일 것이다. 예전 사람들의 사랑 표현은 물맛 같았고, 근래의 사랑표현은 마치 소다수 같지만 그 사람의 거짓 없는 마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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