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슴 속 가시

2012-06-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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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며칠 전인 5월 28일 메모리얼 데이가 있었고 6월에는 한국 전쟁 기념일이 있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투쟁하고 싸우며 오늘날의 세상을 만들었다.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뉴욕타임스 자매지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인터넷판이 2010년 의회조사국(CRS) 보고에 따라 1776년 건국이래 230년이 조금 넘은 미국의 역사 가운데 47년간 전쟁을 치렀다면서 이는 미 국민이 5년마다 1년씩은 전시에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1,700년대에는 식민지 개척자들이 아메리칸 인디언들과 싸웠고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영국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독립전쟁을 치렀다. 1800년대에는 스페인과 멕시코, 남과 북의 내전까지 치렀으며 1900년대에 이르러서는 미군 수만명이 전사한 한국 전쟁을 비롯,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 걸프전쟁을 치렀다. 다시 2,000년대에는 9.11테러로 인해 야기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전까지 치러야 했다.

얼마 전, 미국이 지난 150년간 치른 전쟁 사진 100장을 본 적이 있다. 1862년 북군 천막 앞에 선 링컨, 1863년 게티스 버그 연설을 하는 링컨, 남군과 북군의 캠프 장면은 신생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시 해안가에 상륙하는 군인들, 불붙은 비행기가 추락하는 순간, 1941년 일본의 진주만 습격으로 불타는 막사에서 우왕좌왕하는 미군들, 1944년 파리를 행군하는 미군, 1945년 2차대전 종결소식을 듣고 환호하는 타임스퀘어의 시민들 속에 수병과 여인의 키스 사진도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시 폭설에 덮힌 들판을 행군하는 미군, 전우의 시신을 끌고 가는 군인, 서로 붙들고 우는 군인, 그리고 맥아더의 인천 상륙 장면이 있었다.
1960년대와 70년대 월남전 당시 불타는 베트남 농가, 헬리콥터에서 내리는 완전무장 군인들, 부상당한 동료의 상처에 붕대를 매주는 의무병, 붕대로 얼굴을 감싼 군인을 안은 사병, 전우의 죽음에 부둥켜안고 우는 미군 남녀, 그리고 논두렁과 물가에 쓰러진 미군들, 사이공의 마지막 탈출시 헬리콥터를 타려고 줄선 사람들, 1911년 페르시아 걸프전에서 폭탄이 터지는 전장에 선 군인들도 보았다.

현장성과 기록성 강한 사진들을 보는 내내 마음이 착잡했는데 가장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은 전쟁터로 떠나는 아버지의 한쪽 다리를 꼭 껴안고 서있는 서너 살짜리 꼬마,집으로 돌아오는 병사를 맞으러 두 팔을 가득 펼치고 달려가는 가족사진이었다.죽음의 현장에서 살아남아 환하게 웃으면서 돌아오는 군인의 미소, 그 사진들에서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꼈다.

전쟁은 국가적으로는 인권 평등과 초강대국 성장의 기회를 마련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부모형제, 자녀 중 누군가가 전사하며 평생 가슴 속 가시처럼 남았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미국내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딜 가나 참전용사 기념비나 기념공원을 만날 것이다. 작은 마을 입구나 관광지, 보스턴의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가장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길목에 그 마을 또는 그 대학 동문으로 미국이 참여한 전쟁에 나가 사망한 전사자 명단이 새겨진 기념비나 동판을 자랑스레 내걸고 있다. 역사가 짧은 미국은 국가와 사회에 봉사한 자들을 영웅으로 대접한다.

오는 25일은 한국전 기념일이다. 동네 옆집의 일가친척, 친구 중 누군가에게 한국전 참전용사가 있을 것이다. 이름도 못 듣던 낯선 나라에 가서 싸우다 사망한 그들, 적의 수류탄에 팔다리를 잃었거나 목소리를 잃은 상이군인들, 가족들에게는 어떤 빛나는 무공훈장이나 ‘영웅’ 칭호, 넉넉한 연금보다는 단한번 뿐인 인생을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가고 싶지 않았을까.전쟁사진을 보면서 제 인생을 저당 잡힌 죽은 자나 젊은 시절 낡은 사진으로 남은 아버지나 남편을 둔 남은 가족들, 그들 가슴에 박힌 가시는 누가 뽑아주었을 까 싶었다.전장에 나가는 아버지의 한쪽 다리를 양팔로 감싼 채 엉엉 울던 꼬마는 이미 장년이, 노년이 되었을 텐데, 그 가슴속 가시는 뽑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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