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디지털 디톡스’

2012-05-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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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인간은 만물의 영장답게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생각하는 고등동물이다. 그래서 사색과 명상을 통해 정신문화를 발달시켰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만들어낸 온갖 문명의 이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끝없는 호기심과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전화, 텔레비전, 자동차, 비행기, 우주선, 셀룰러폰, 인터넷, 아이팟, 스마트폰 등의 잇따른 개발로 속도와 시간이 단축되고 삶의 반경이 좁아지면서 모든 인류가 지구촌의 이웃이 되는 혁신적 변화를 가져왔다,

끊임없이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이제 생명공학에까지 영역을 넓혀가며 인간 역량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브라운대학 연구팀은 마비된 사람의 뇌 피질에 생각할 수 있는 센서를 이식, 로봇으로 하여금 환자의 손과 발 역할을 하도록 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MIT의 닐 거센필드 박사는 21세기 중반쯤 스스로 생각해서 행동하는 컴퓨터가 나올 것으로 예측한다. 같은 대학의 마빈 민스키 교수는 몸에 인공장기를 이식하고 뇌에 컴퓨터를 이식한 인간이 등장할 것으로 예견한다.

그러나 인간의 두뇌가 개발해내는 문명의 이기에 오히려 인간 자신이 노예가 되면서 몸과 마음이 점점 옥죄이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음은 아이러니다. 그 문명의 이기들이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구촌을 황폐화시키고 인간의 몸에 알레르기, 아토피 등 원인모를 각종 질병을 유발시킨다. 문명의 이기가 편리해질수록 인간은 몸을 움직이지 않아 건강을 해치게 되고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과의 소통부재로 정이 메말라지면서 정신질환이 늘어나게 되고 사회는 각종 사건 및 범죄가 횡행하게 된다.


문명의 이기는 이제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건강까지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한국의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 전자통신연구원이 최근 휴대폰 전자파가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휴대폰을 장시간 사용하는 어린이들은 주의가 산만해지거나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과잉행동장애(ADHD)이다. 각종 전자기기에서 나오는 전자파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이 훗날 어떤 성인이 될 지 매우 염려스럽다. 이런 염려를 반영하듯 최첨단 통신기술 문화와 관련된 신조어도 난무한다.

각종 소셜 미디어에 중독된 것을 일컫는 ‘이딕션(E-ddiction)’ 무슨 일을 할 때 15분 이상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쿼터리즘(quarterism)’ 디지털 스크린에 집중하다 보면 현실과 동 떨어지는 상태의 자연결핍장애(nature-deficit disorder) 등이 그것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교재 출판업체 코스스마트가 최근 미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기기 없이는 1시간도 버티지 못한다고 대답한 학생이 67%, 단 10분도 참기 어렵다는 학생이 40%정도였다. 젊은이들에겐 이들 문명이기가 이미 몸의 일부나 마찬가지이다. 몸과 마음을 다칠 정도로 깊이 빠지지 않고 문명이기를 이용할 수는 없을까?

구글의 회장이자 최고경영자인 에릭 슈밋은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없는 경험의 소중함을 들어 균형의 지혜를 강조하며 잠시 인터넷에서 멀어질 것, 이른바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를 권면했다. 인터넷에 너무 심취해 정보의 홍수와 이메일의 바다에 고립되다 보면 자연히 몸과 마음을 다치고 주위 사람들과도 소원해질 수밖에 없으므로 인터넷을 잠시 끄고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면 균형잡힌 생활이 가능할 것이라는 메시지다.
미국의 저명한 정보기술 전문가인 니컬러스 카도 유사한 말을 했다. 그는 오랫동안 인터넷에 푹 빠져 살다보니 이제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됐다고 털어놓고 “기술의 유혹은 거부하기 어렵다. 인스턴트 정보시대에 속도와 효율성이 주는 이득은 더 이상 논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사색과 명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잘 정제된 생각과 감정이 잠식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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