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

2012-05-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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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우(자유기고가)

미국에서는 미식축구가 축구보다 더 인기가 높다. 그러나 나는 별로다. 왜냐하면 구경꾼으로서 첫째는 어느 편이 이기든 관심이 없는데다, 둘째는 선수들이 왜 밀치고 밀리는지 정확한 룰을 모르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한국스님들의 싸움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의 대결, 왜 싸움을 하는지 영문도 모르면서 그냥 어깨 너머로 구경꾼 속에서 그들의 다툼을 구경만 했다.

모든 언론이 그들 싸움에 열기를 불어 넣고 있을 때 ‘돈오돈수’는 어떤 팀이며, ‘돈오점수’는 또 어떤 팀 인가 궁금했다. 단어 차체가 불자(佛者), 그들만이 알고 있는 말이기 때문에 비 불자들은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돈오돈수는 깨달음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었고, 돈오점수는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 하는 깨달음과 닦음의 문제였다.


법(法)은 본래 하나의 성품이지만 보는 견해에 따라 더딤과 빠름이 있다. 그러니 무엇이 돈(頓)이고, 무엇이 점(漸)인가? 즉 무엇이 ‘문득 아는 것’이고, 무엇이 ‘점차 아는 것’인가? 다. 원래 법에 있어서는 ‘돈’ 법과 ‘점’ 법이 따로 없다. 돈오돈수 파들은 깨달으면 그만인데 닦을 것이 무엇이 있는가? 하는 것이고, 돈오점수 파들은 점수에 치우쳐 높고 낮음 깊고 얕음, 다시 말해서 고하심천을 가리는 파들이다.

불교에슨 ‘습마물임마래(什魔物恁?來)’란 말이 있다. 습마물이란 ‘무엇인가?’ 란 뜻이고, 임마래는 ‘어찌해서’란 뜻으로 “무엇이 어떻게 이렇게 왔는가?”를 말함이다. 나는 대체로 무엇인가? 너는 대체로 무엇인가? 그리고 어디서 어떻게 이렇게 왔는가?로 ‘무엇’ 이란 사실 따지고 보면 불교 전부를 이야기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조그만 티끌 하나도 잘 보면 반야(般若)지혜(知慧)이고 잘못 보면 하나의 티끌에 불과하다. 티끌 하나도 잘 보면 그 속에 무수한 원자들이 움직이며 그 움직임에 따라 성품이 계속 변하고 있는 것이 보일 것이고, 껍데기만 본다면 그냥 티끌로 보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최근 승려들의 도박사건이 불거져 불교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승려들이 호텔에서 술, 담배를 하며 거액의 도박을 한 것이 동영상에 떠서 만천하에 그 타락하고 추한 모습이 공개돼 불교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일부 불자들의 이런 추행은 모든 불자들은 물론,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오는 28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문제의 승려들은 부끄러움을 알고 자신들의 잘못을 부처님 앞에서 참회하고 뼈를 깎는 심정으로 다시 수행에 정진해 망가진 불교계의 위상을 되찾야야 한다. 그리고 실망한 수많은 불자들의 삶에 본이 돼 사회가 다시 밝고 깨끗하고 환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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