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리의 꽃, 뉴욕의 보석

2012-05-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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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갑자기 눈앞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에펠탑을 배경으로 불꽃이 밤하늘에 펑펑 터지고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 ‘장미빛 인생’이 들리는 것같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파리에 한송이 화려한 꽃이 피었다. 못살던 나라 조국 대한민국이 버린 딸이 16일 발표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각료 34명 중 한명으로 중소기업·디지털 경제장관으로 임명된 것이다.

17대 17의 남녀평등 내각에 한국계 최초로 프랑스 장관이 된 그녀의 이름은 플뢰르 펠르랭(38), 플뢰르(Fleur)는 프랑스어로 ‘꽃’이란 뜻, 이름만 보아도 그녀의 양부모가 그녀를 꽃처럼 예뻐하고 귀하게, 기뻐하며 키운 것을 알 수 있다.

1973년 8월 29일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서울 거리에 쓰레기처럼 버려져 고아원으로 간 김종숙, 프랑스 양부모는 6개월 된 아이를 파리로 안아와 ‘플뢰르’라 이름짓고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정성껏 돌봐 화사한 꽃으로 피워냈다.
플뢰르 펠르랭은 중소기업·디지털 장관이니 IT 강국 한국에 초고속 통신망과 기술 혁신 시스템을 둘러보러 생전 처음 한국으로 출장 올 수도 있겠다.
한국 입양관계자나 언론이 친부모를 찾아준다거나 친부모가 스스로 나섰다거나 하는 쓸데없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 바란다. ‘어쩔 수 없었다’며 고개 숙인 부모와 말 한마디 안 통하는 플뢰르가 마주 앉는 사진은 절대 보고 싶지 않다.


“버려진 아이라는 사실이 늘 힘들었다. 좋은 양부모를 만난 것은 내게 행운이었다. 따뜻하고 큰 사랑을 준 그들은 진정한 가족이다. 친부모를 찾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녀 말처럼 외모만 한국인 일뿐 행동이나 사고방식은 프랑스인 플뢰르는 한국에서 자랐다면 천덕꾸러기에 누더기 같은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좋은 환경의 양부모를 만나 보호받으며 살았다고는 하나 검은 머리, 노란 얼굴, 낮은 코의 자신이 노랑머리, 파란 눈의 부모와 다르다는 것을 일찍이 눈치 챘을 것이다.

자신은 버려진 존재라는 사실에 늘 가슴 한 쪽이 서늘했을 것이고 명문학교와 엘리트 정치가의 길을 걸으려고 남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이 모든 것은 가족의 따스한 사랑이 만들어낸 것이다.

뉴욕에 살면서 놀이동산, 그로서리, 길거리 등에서 백인 부모가 동양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볼 때가 종종 있다. 대부분의 한인들은 속으로 만 ‘한국애네’ 하며 멀리서 바라볼 뿐 가까이 다가가 아이에게 아는 척 하지 않는다.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아이를 입양하는 한인가정이 늘고 있다고 한다.(한국일보 5월22일자 1면 가정의 달 기획-입양은 희망이다) 입양 가정 야유회 모임도 갖고 있는 이들은 갓 돌을 넘겼거나 병을 앓고 있는 아이를 한국에서 데리고 와 치료 해주고 사랑을 주고 있다.

올 초에는 아이가 없던 가정에 축복처럼 내려진 남자아기 J의 생일파티에 간 일이 있다. 파티장은 엄마아빠의 지인들이 직접 만든 쿠키와 케익에, 풍선과 리본으로 근사하게 꾸며졌다. J는 넓은 파티장 안을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고 바닥을 구르는 골목대장이 되었고 새로 맺어진 사촌형들은 어린 J를 졸졸 따라다니며 껴안아주고 뽀뽀했다. 한국에선 부모에게 외면당했으나 뉴욕에서 그 아이는 ‘보석’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처음엔 아이가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서있기만 했다. 안는 것을 몰랐다. 다정하게 계속 이름을 불러주고 안아주자 나중엔 스스로 걸어와 안겼다” 공개입양을 한 가족은 그렇게 말했다. 그날, 아이를 안고 선 엄마는 신기하게도 J와 똑같이 닮아있었다. 누가 봐도 그 아이를 가슴으로 가 아니라 열달간 뱃속에 품고 세상에 내놓은 엄마였다.

축하객으로서 뜻하지 않게 J의 장래를 지켜보게 되었는데, 파리에서 꽃을 피운 것처럼 J와 한인입양인들은 모두 뉴욕에서 다이아몬드처럼 귀한 존재가 될 것이라 믿는다.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하는 일은 무한하고도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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