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리스와 ‘아나바다’ 운동

2012-05-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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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그리스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발동시켜 꼭 한번 가보고 싶게 만드는 나라이다. 수많은 신과 영웅, 위대한 서사시와 신화 등이 고대 서양문화의 골격을 이루는데 엄청난 영향을 끼친 나라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온 유럽과 이집트를 포함, 중동 전역을 석권하면서 그리스어는 당시 세계어로 통용됐다. 이처럼 찬란한 역사와 문화, 전통을 자랑하는 그리스가 요즘 재정적으로 ‘디폴트’(부도) 위기에 직면해 있어 세계 각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리스는 이번 총선에서 연정구성에 실패했다. 제 2당으로 발돋움한 진보좌파연합이 긴축이 아닌 성장정책을 추구하자 유럽연합도 ‘긴축 없는 구제는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임에 따라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탈퇴 가능성이 40% 정도까지 점쳐지면서 디폴트가 현실화 되는 것이 아니냐며 전문가들이 긴장하고 있다.

정말로 그런 사태가 일어난다면 지구촌의 경제는 대단히 심각한 상황을 맞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동반할 충격이 이탈리아, 스페인 등 다른 국가로 전염될 경우 유로존 붕괴는 불가피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의 사태에 두려움을 갖는 것은 지금 세계는 하나의 그물망으로 엮어져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IT기기의 출현으로 다른 나라의 여러 상황을 자기 손금 보듯이 알 수 있다. 한 나라가 기침하면 다른 나라가 독감을 앓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지구촌은 좁아졌다. 그래서 지금 세계 각국은 그리스의 재정위기를 주시하며 외화유동성 확보 및 신용경색 방지 등에 신경을 쓰고 있다.


한 국가의 재정은 권력층의 수뢰와 부정부패 혹은 퍼주기 식 복지정책 등으로 잘못하면 거들나기 쉽다. 대기업 1%가 생산성 없는 투기로 운영을 부실하게 해도 국가의 재정이 고갈되고 나라의 기반이 흔들린다. 아무리 역사가 길고 문화가 찬란하더라도 국가의 재정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지난 1997년 한국의 IMF 사태(외환위기)도 지금의 그리스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때 한국은 다행히도 전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금 모으기 운동 등을 펼치면서 나라의 위기를 모면했었다. 그러나 그리스의 현실은 그나마 기대할 수 없는 모양이다. 요즘 그 나라 국민들이 너도 나도 은행에 가서 현금인출을 서두르고 있다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은 한때 세계경제 및 금융의 메카로 군림했지만 지금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지난 5년 전 맨하탄의 리만 브라더스의 탐욕스런 투기로 국가경제가 위기를 맞은 뒤 지금까지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그리스에 또 재정위기가 도래하면 그 여파가 어느만큼 우리에게 미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세계의 위기는 곧 내 나라, 내 가정, 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은 아직도 온 국민이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다. 물론 국가의 위기는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 개개인이 난국타개에 보탬을 줄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한국에서 IMF때 펼쳐졌던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 쓰고) 운동’이 생각난다. 물건을 서로 나눠 쓰거나 바꿔 쓰고, 쓰지 않던 물건을 다시 사용하고, 수도와 전기 등을 아껴 쓰자는 운동이다. 사고 팔지도 않으면서 경제순환을 봉쇄하자는 뜻이 아니다. 생활에 필요한 경제활동은 왕성하게 하되, 개개인이 국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해보자는 이야기다.
남아도는 생활용품, 가구, 의복, 장난감 등을 필요한 사람에게 건네주고, 가정과 식당에서 음식을 함부로 버리지 말며, 대낮에 전깃불을 그대로 켜 놓거나 에어컨과 히터를 쓸데없이 틀지 말자는 것이다. 이런 운동을 일상적으로 실천한다면 그것이 바로 티끌이 모여 태산을 이루고, 떨어지는 물방울이 잔을 채우는 그런 효과를 가져와 내 가정과 내 나라는 물론, 지구촌의 살림살이가 좀 더 윤택해지지 않겠는가.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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