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하는 황범이는 비록 떠났지만…

2012-05-2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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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식(아이폰 강탈 사건으로 숨진 고 양황범씨의 부친)

시간이 지나면 현실로 받아들여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사랑하는 아들 황범이가 퇴근하여 집에 들어올 시간이 가까워지면 혹시라도 지하철역에 도착했으니 픽업 하라는 전화가 올까봐 손에 전화기를 꼭 잡고 잠자리에 누워 뜬눈으로 밤을 새우곤 한다. 아내도 시간만 나면 아들한테 간다면서 Cambridge Avenue 언덕 위 황범이가 피를 흘린 채 싸늘하게 누웠던 소화전이 있는 곳으로 가 넋을 잃고 소화전을 바라보곤 한단다.

지난 4월 19일 새벽, 경찰이 집에 찾아와서 Kings bridge 부근 콜럼비아대학 부속 병원에 안치된 시신을 확인하라고 할 때만 해도 설마 하는 조그마한 희망을 안고 떨리는 가슴으로 병원엘 들어섰다. 병실이 아닌 시신 보관실로 안내하기에 아들 황범이가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하얀 시트를 여는 순간, 멍이 들고 붓기가 있는 아들임이 확인돼 아무리 얼굴을 부비고 흔들고 소리 질러 황범아! 하고 불러 보았지만 싸늘한 시신은 끝내 답이 없었다.


날이 밝아 평소 우리가족이 다니는 성당 신부님을 만나러 가려는데 갑자기 아내가 평소 황범이가 입고 다니던 셔츠를 가지고 나와 얼굴에 부비면서 “아직 황범이 냄새가 나” 하면서 흐느끼는 것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였다.
그렇게도 원했던 요리사, 항상 입버릇처럼 “한국으로 돌아가서 유명 호텔의 주방장이 될 거야” 하면서 꿈을 키워가던 소망의 꽃망울이 서서히 영글어가고 있는데 그 꿈이 채 피기도전에 무참히 꺾이고 짓밟혔으니 가슴에 한을 품고 부모 곁을 떠났으리라. 부모로서 자식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현실을 원망하고 마음을 닫고 살려 했는데 뜻밖에 주위의 관심과 격려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가족에게 마치 어두운 방 문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 같은 역할을 해 주었다.

장례식장 예약부터 묘지 구입, 그리고 연도(Wake Service) 관례를 깨고 과감히 장례식장이 아닌 성당에서 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희생자인 우리 가족만의 슬픔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 더 나아가서 생명의 존엄함과 거룩함을 깨우쳐 주신 본당 남해근 주임 신부님, 범인 검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뉴욕 영사관 관계자, 신속히 범인 체포에 공헌한 관할 50경찰서 서장님과 관계자 여러분, 주에서 장례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 Crime Victims Support of the North Bronx의 관계자 여러분들, 무엇보다 언론에서 신속히 사건 보도와 특별한 관심을 가져 주어 황범이가 떠나는 마지막 길에 친구, 지인뿐만 아니라 뉴욕의 많은 시민들이 배웅을 해주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가면서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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