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등대에 있소”

2012-05-2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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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

깜깜한 밤바다를 전속력으로 항해하는 큰 배가 가까운 거리에서 빠르게 접근하는 다른 배의 불빛을 발견하였다. 큰 배에서 다른 배에게 먼저 긴급 신호를 보냈다.

“지금 즉시 진로를 남쪽으로 20도 바꾸라.” 상대방 배에서 이런 회신이 왔다. “그쪽에서 즉각 진로를 북쪽으로 20도 바꾸시오.” 큰 배의 선장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령관이다. 즉시 진로를 남쪽으로 바꾸라.”
거기에 대한 답신은 이랬다. “나는 일급 항해사요. 당신이 진로를 북으로 바꾸시오.” 사령관은 있는 대로 화가 나서 다시 신호를 보냈다. “다시 말하건대 진로를 남쪽으로 바꾸라. 아니면 발포하겠다. 나는 군함에 타고 있다.”
다시 답이 왔다. “나도 다시 한 번 말하건대 당신이 진로를 북으로 바꾸시오. 나는 등대에 있소!”


이 이야기는 절대적 기준의 수용을 거부하고 자신이 정해 놓은 편리한 기준에 따라 살아가기를 고집하는 현대인의 이기적 상대주의를 풍자하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 낳은 이기적 상대주의의 만연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이기적 상대주의의 병폐가 제일 심한 곳은 정치권이다. 선거철을 맞이한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도무지 기준과 규범 없이 살아가는 듯하다. 필요에 따라 얼마나 언행(言行)을 잘 바꾸는지 마치 파충류의 변색 본능을 보는 것 같다.

이스라엘 민족은 5천 년 이상 나라 없는 디아스포라(Diaspora)민족으로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도 유일신 신앙의 정체성을 굳게 지키면서 지구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이유는 변하지 않는 두 가지의 절대기준 때문이다. 첫째는, 운명공동체(fate-nation)로 묶인 민족 기준이다. 둘째는, 신앙공동체(faith-nation)로 묶인 종교규범 기준이다. 그래서 유대인 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그냥 하나의 민족 명칭이 아니다. ‘공동 운명’과 ‘공동 신앙’ 이라는 절대적 기준에 의해 묶인 약속의 공동체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는 한 배에 탔다는 운명공동체 의식이 약하다.
경주 최씨는 300년 이상 존경받는 부자의 지위를 지켜 온 명문가로 유명하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 그것은 부에 대한 엄격한 기준과 높은 도덕적 규범 때문이다. 첫째, 과거는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 둘째, 만석의 재산을 모으지 말라. 셋째, 흉년에는 남의 논을 사지 말라. 넷째, 찾아 온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라. 다섯째, 근처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여섯째, 시집 온 며느리는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이와 같은 엄격한 기준과 규범 안에서 존경 받는 경주 최씨 가문이 섰다.

공목(空木)을 아는가. 조판(組版)할 때 활자 행간에 끼우는 나무나 키가 작은 납 조각을 말한다. 공목이 없으면 편집과 인쇄가 불가능하다. 그것이 곧 기준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리더인가. 한 차원 높은 규범을 확립한 진정한 리더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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