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처작주(隨處作主)

2012-05-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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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며칠 전 신문에 눈이 번쩍 뜨이는 기사가 있었다. 미국의 주택가격 폭락세가 진정되고 수요가 살아나면서 1930년 이래 최악의 침체를 보였던 부동산 시장이 바닥을 쳤다는 분석 기사였다. 또 미국경제가 향후 몇 분기에 걸쳐 완만한 성장세를 유지하며 서서히 살아날 것이라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낙관적인 경기진단 기사도 있었다. 지난 5년 전부터 세차게 불어닥친 미국의 불경기는 이제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황에까지 다다랐다. 한인사회 경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인식당이나 노래방 같은 업소에 갔다가 문이 폐쇄돼 발길을 돌렸다는 지인들의 얘기를 종종 듣는다. 이제나 저제나 경기가 풀릴까 노심초사하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한인들이 요즘 어디 한 둘 일까? 상인들은 그렇다 치고 아직 세상에 채 발도 내딛지 않은 젊은이들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 교정을 나서는 대학졸업생들이다. 청운의 꿈을 품고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은 하게 됐지만 막상 현실은 그 꿈을 펼쳐나갈 토양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올해 대학 졸업생들은 1인당 평균 약 2만 3,300달러의 학자금 대출 부채를 안고 대학문을 나선다. 이런 상황에서 벌써부터 올해 대학 졸업생 중 절반이 실업자 신세가 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왔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지난해 보고서에는 대학졸업자 실업률이 무려 53.6%나 되었다. 이들 중 3분의 1이 웨이터, 웨이트리스, 바텐더, 안내직 등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도 비슷한 전망이어서 대학을 마친 후 취업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졸업생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UCLA의 고등교육 연구소가 전국 대학생 20만 1,81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자신의 심리상태가 현재 부정적으로 치우쳐 있다고 말한 것으로
밝혔다.

이제까지 부모의 따뜻한 보호와 학교의 안전한 틀 안에서 곱게 자라온 졸업생들은 이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약육강식의 정글과 상어가 득실거리는 검푸른 바다에 던져질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앞으로 이 험난한 세파를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가 관건이다.졸업생들은 비록 절벽을 향해 대학문을 나서는 기분이겠지만 어떻게든 정진해서 새로운 세상에서 자신의 꿈을 펼쳐나가야 한다.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이들에게 ‘수처작주(隨處作主)’의 정신을 권하고 싶다. 이 말은 원래 선불교에서 나온 말로 ‘어느 곳에서든 주인이 되라’는 뜻이다. 주인은 어떤 물건의 소유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그 자리의 모습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주인공 역할을 하라는 의미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본인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자리의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가 졸업생들에게 조언한 말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성공한 젊은이들을 보면 대부분 바깥에서 문제를 찾아 풀어간 주인공들이라며 그들이 성공한 것은 자기가 계획한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한 공헌의 결과였다고 강조했다.대학문을 나서는 졸업생들이여, 비록 여건은 험난할지라도 이런 속에서도 성공한 위인들의 삶을 돌아보자. 난세에 영웅이 나듯이 위기는 곧 기회다. 명사들이 당부하는 조언을 귀담아 듣자. 내 운명을 결정짓는 사람은 바로 나임을 분명히 깨닫자. 상황이 어떻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도로 발휘하며 매진함으로써 처한 자리를 빛나게 하자.

우리 주위에 그런 삶을 살고 간 입지전적인 인물이 있다. 불우한 환경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기가 하는 일의 주인공이 돼 IT혁명을 가져오고 세상을 변화시킨 애플의 공동창업자 고 스티브 잡스이다. 그가 지난해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늘 갈망하라, 늘 우직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고 한 충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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