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05-1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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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장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더 접어야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 순간,
햇살에 배겨나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어보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박영희(1962 - ) ‘접기로 한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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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종이로 접어서 공도 만들고 학도 만들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 전 접어보았더니 도통 만들어지지가 않았다. 심지어 그토록 많이 접어보았던 종이비행기조차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통 접어보지 않은 탓이다. 나이가 들면 더 많이, 더 잘 접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다. 우선 이 시에서처럼 반만 접어보아야겠다. 꿈도 욕심도, 분노도, 용서도 반씩 접어 보아야겠다. 그것도 힘들면 반에 반만이라도 접는 법을 다시 배워나가야겠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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