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머니와 억새풀

2012-05-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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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일년에 배정된 몇 주의 휴가를 모아 한해도 거르지 않고 모국의 어머니에게로 달려갔다.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나의 디아스포라 삶속에서 어머니는 나의 정체성의 뿌리였다. 태평양을 가로질러간 거대한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미끄러지듯이 고국 땅에 닿는 순간은 가슴이 벅차 오른다. 우리 모녀의 이별의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껴안고 울음을 쏟아내며 딱딱하게 응고되었던 이방인의 슬픔의 덩어리를 녹였다. 눈물이라는 액체는 슬픔을 씻어내는 카타르시스가 아닌가? 그런데 10년 전 두꺼운 어둠을 깨트리는 전화벨이 울리고 어머니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전화로 통화한지 몇 시간도 안 되었다. 이렇게 한 사람의 길고도 긴 생애와 동작이 어느 한 순간에 멈출 수 있을까?


죽음이라는 냉혹한 칼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삶과 시간을 가혹하게 갈라놓는다. 이제 고국 땅을 밟아도 어머니가 마중 나오지 않는 공항은 수확을 거둔 텅 빈 들녘 같다. 이제 나는 고국에 들려도 잠시 머물다 떠나가는 영원한 이방인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고국에 들리면 찾아가는 어머니 산소에는 어머니의 숨결과 속삭임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머니 묘지의 산기슭에는 억새풀이 무성하다. 하얀 머리채를 흔드는 억새풀이 바람에 서로 몸을 비비며 서걱거리는 마른 풀 소리는 어머니의 속삭임소리 같다.

어머니는 살아생전에 어떤 역경 속에서도 질기게 살아남는 억새풀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사람의 키 만한 억세고 뻣뻣한 억새풀을 마당에 하나 가득 심어 억새풀 밭을 만들었다. 어머니는 억새풀을 만지다가 날카로운 갈고리 같은 가시에 손등에 피가 흐르곤 했다. 일제강점기의 암흑시대, 6.25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은 우리 어머니들의 억척같은 삶을 살아온 자신을 닮았기 때문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눈부신 남극의 얼음 위에 집단으로 모여사는 펭귄의 처절한 모성애를 그린 가슴이 찡해오는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다. 펭귄은 둥지를 틀고 1년에 하나나 둘의 알을 낳아 키운다. 엄마펭귄은 알에서 깨어난 새끼를 아빠펭귄에게 넘겨주고 물고기 사냥으로 먹이 감을 구하러 바다로 떠나야 한다. 엄마 펭귄이 떠난 후 아빠 펭귄은 추위에 새끼가 얼어 죽지 않게 하기 위해 체중이 반으로 줄어들면서도 4개월 동안 새끼를 품는 부성애는 눈물겹다.

엄마펭귄이 바닷속에서 먹이를 잔뜩 사냥하여 뱃속에 가득 채우고 빙하 위로 뛰어오르려는 순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바다표범이 펭귄을 덮친다. 겨우 목숨을 건진 상처투성이의 엄마펭귄은 뒤뚱거리며 얼음 위를 걷다가 지쳐버렸는지 얼음 위에 배를 깔고 계속 앞으로 전진한다. 험난한 긴 여정 끝에 도달한 곳은 새끼가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었다. 상처 입은 어미는 즉시 입을 벌려 배속에 채워온 물고기를 토해내며 새끼에게 먹이를 먹인다.

생태계의 모든 생명의 뿌리는 모성애다. 우리 한인이민자들이 이국땅의 불모지 땅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에너지의 원천은 억새풀 같은 우리 어머니들의 억척같은 생명력이다. 어머니와 억새풀은 강인한 삶의 숙명적 고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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