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억 만들기’ 선물

2012-05-11 (금)
크게 작게
민병임(논설위원)
일년내내 무덤덤하게, 별 관심없이, 늘 그 자리에 있는 가구처럼 당연히 함께이던 가족이란 존재가 5월이 되면 참으로 시끄러워진다.5일은 한국의 어린이날, 8일은 한국의 어버이날, 13일은 마더스 데이, 15일은 스승의 날 등 뉴
욕에 살면서 한국과 미국의 기념일을 다 치르고 있다. 오는 13일 마더스 데이에는 멀리든 가까이든 따로 살던 자녀들도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하거나 모처럼 시간을 내어 어머니를 만나러 갈 것이다.

한인사회 여러 단체에서는 5월을 맞아 노인잔치, 무료 식사제공과 사진촬영 등의 감사와 나눔 행사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비즈니스 업계에서는 가정의 달을 마케팅 일환으로 마더스 데이 할인행사와 특별메뉴를 내놓고 있다. 이러한 기념일마다 용돈, 옷, 주얼리, 화장품, 의류와 신발 등 다양한 선물이 따르고 있다.

지난 5년간 새벽부터 밤까지 가게 문을 열고 7일내내 일하며 이제 겨우 이민생활에 자리를 잡은 부부가 있다.이민생활 20년에 물장사, 과일장사, 꽃장사, 온갖 장사를 다해도 실패만 하다가 뒤늦게 좋은 장소에 작은 델리를 내면서 생활에 안정을 찾은 이웃이다. 지금도 여전히 새벽에 가게 문을 열고 늦게 닫지만 가게를 매니저에게 맡기고 올봄에 생전처음 네 가족이 플로리다 올란도로 휴가를 다녀왔다.


디즈니랜드야말로 어린이나 어른들에게나 꿈과 환상의 나라가 아닌가. 그런데 동화 속 세계를 다녀온 고등학생 아이들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진작에 데려다주지 그랬어요. 좀더 크기 전에 갔었더라면 정말 좋았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을텐데....”아이들은 순진무구한 동화의 세계에 감명 받기에는 이미 나이가 들어버린 것이다.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피터 팬을 보며 상상의 날개를 펴기에는, 이미 그것은 현실에서 결코 이뤄지지 않는 막연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매일 저녁 시커멓게 어둠이 몰려오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베비 시터가 해놓은 식어버린 음식을 먹거나 찬 음식을 먹기 싫어 배를 쫄쫄 굶으며 목 빠지게 부모를 기다리던 아이들 심정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꼭 필요한 순간을,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구의 부모’, ‘누구의 자녀’가 사는 가정은 행복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한다. 아이들의 성장 시점에서 부모가 함께 만들어가는 추억이 있으면 그 시절이 행복했다고 기억될 것이다. 물론 한인 중에는 아무리 수천, 수만 달러짜리 일거리를 지닌 고객이 만나자고 해도 주말이면 무조건 아들딸을 데리고 등산을 가거나 캠핑, 낚시를 가는 아버지도 있을 것이다. 베비 시터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만 자녀를 맡겨두지 말고 이렇게 무리를 해서라도 시간을 같이 보내면 아이들이 자라서 어린 시절 부모에 대해 추억할 것이 있다.

아이의 성장기를 놓쳤다면 아들딸이 출가 전에 아직 기회가 있다.
주위에 대학원을 졸업 후 취직해 모은 돈으로 자신과 어머니 해외여행 경비를 댄 딸을 둔 친구가 있다. 딸은 아직 남자친구는 없지만 2,3년 후면 결혼을 할 테고 그러자면 단둘이 가는 여행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싶어 작년 가을 신나게 이태리 북부 지방으로 기차여행을 다녀온 후 말했다. “대학도 집에서 다녀 아이가 상당히 명랑하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일주일이상 함께 먹고 자며
생활하다보니 의외로 진지한 면이 있어.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싫어하는 지에 대해 훨씬 더 잘 알게 되었어. ”친구는 지금도 딸과 함께 배낭을 메고 피렌체, 볼로냐, 베네치아, 밀라노를 구경하며 맛있는 것을 사먹던 일을 떠올리면 세상에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고 앞으로 몇 년간 집에만 있어도 남부럽지 않다고 했다.

이번 가정의 달에는 눈에 보이는, 생색나는 선물 말고 온가족이 함께 ‘추억 만들기’ 선물을 추천한다. 어머니날에 멀리 여행갈 처지가 안 된다면 김밥과 돗자리 들고 존스 비치 바닷가나 브롱스 동물원, 브루클린 식물원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 ‘소풍 간다’는 것만으로 어머니 얼굴에 화색이 돌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