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문화 가정은 시대적 추세

2012-05-0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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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한국에서 10-20년 전만 해도 거리에서 타인종과 같이 다니는 모습을 보면 거부감을 갖고 그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인식속에 살아오던 한국인들이 거의 200개나 되는 인종이 어우러져 돌아가는 미국에 와 살면서도 같은 의식을 버리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지금도 없지 않다.
이제 지구촌은 인터넷이라는 빠른 정보기능의 발달로 피부색, 인종 구분없이 하나가 되어 돌아가고 있다. 타인종에 대한 인식이 어느 나라보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던 한국에서조차 지금은 필리핀, 파키스탄, 타이완 등지에서 신부를 데려다 결혼하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현실이다. 한국에 유입된 타인종 100만명중 10만명이 타인종과의 결혼커플이라고 한다.

물론, 우리가 사는 미국에서도 타인종과 결혼해서 사는 한인들을 많이 본다. 한국식품점이나 한국식당 등에서 타인종과 같이 다니면서 식품을 사거나 음식을 먹는 커플, 혹은 가족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퀸즈 칼리지 재외한인사회연구소가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내 한인인구의 약 15%가 혼혈일 정도로 미국태생 한인 10명중 6명이 타인종과 결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6년도부터 2008년도까지 센서스자료를 토대로 조사한 이 보고서에는 타인종과 결혼한 한인 1세대 중 백인배우자 비율이 10.7%로 다수였고 1.5세도 38.3%, 미국 출생자도 38.9%로 집계됐다.

전문 여론조사 기관인 퓨 리서치센터가 올해 초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인들의 족외혼 비율은 1980년대 불과 3.2%이던 것이 지난 2010년에는 8.4%로 급증세를 보였다. 타인종과 결혼을 가장 많이 한 인종은 아시안으로 그 비율은 28%로 집계됐다. 이 연구를 담당한 코넬대학 사회학과 대니얼 릭터 교수는 지난 25년동안 타인종간 결혼이 크게 증가했으며 이러한 인종적 개념 변화로 인종간의 장벽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추세는 미국 뿐 아니라 지구촌 각국에서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어떤 나라는 최고 통치자까지 인종간의 벽을 허물 태세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더구나 그 상대가 한국인이어서 더 흥미롭다.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과 연인 사이로 알려진 한국계 필리핀 방송인 그레이스 리가 최근 현지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결혼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 아직은 확실치 않지만 얼마 전 대선에서 승리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한국인 사위를 맞게 될 것이라는 보도도 있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이러한 변화는 국가간의 이해관계를 도모하고 문화와 교류를 통해 양국이 서로 협력을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동반한다. 또한 혼혈자녀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이 인종간에 좋은 교량역할을 하게 되어 양측 간의 관계에서 친화무드를 조성하는 상황도 얼마든지 기대할 수 있다.

5월은 사방에 꽃이 만발하고 대자연의 생기가 무르익어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린다. 이 좋은 계절에 고민하고 있는 한인 젊은이들이 있다. 타인종과 결혼을 작정하고 있는 2세들이다. 아름다운 봄소식과 함께 주변에서는 결혼한다고 들썩거리는데 이들 중에는 부모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만일 정말로 인종이나 피부색 때문에 자녀의 혼사를 반대하고 있는 한인부모들이 있다면 폐쇄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지구촌 곳곳에서 인종, 피부색 상관없이 서로 좋아하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해서 알콩달콩 잘들 살고 있지 않은가.

내 자식과 결혼하고 싶어하는 타인종 짝이 있다면 서둘러 혼사를 매듭지어 그들의 앞날을 축복해 주는 것이 온당하다. 사랑해서 결혼하겠다는데 무슨 국경이고 피부색이 문제되는가. 자칫하면 내 사랑하는 아들, 딸을 평생 결혼 못하는 노총각, 노처녀로 만들 수 있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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