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얀 카네이션

2012-05-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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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영(목사))

어머니날, 어머니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관습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잘 모른다. 필자가 고등학교 때만 해도 어머니날이 되면 거리마다 카네이션을 달고 다니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날도 어머니날 저녁이었나, 어머니가 “남들은 어머니날이라 고 하여 자식들이 선물을 한다, 카네이션을 달아준다 하며 난리들인데 나는 6남매나 되는 자식들이 있지만 그 흔한 카네이션 하나 달아주는 자식 없다!”하시며 눈물을 훔치며 집에 들어오셨다.

그때까지도 철들지 못했던 나는 “시간이 없습니다” “돈이 없습니다” 하며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어머니를 섭섭하게 해드린, 후회스러운 아픔들이 내 삶의 나이테 속에 지금 흉터로 남아있다. 그 일이 있은 다음해 어머니날 즈음해서인가 나의 책상위에 누군가가 던져놓은 빨간 카네이션 한 송이를 발견하였다. 영문도 모른 나는 그 꽃을 어머니께 가지고 가서 가슴에 달아드렸다.


“돈도 없는 네가 무슨 돈으로 샀느냐?” 하시며 오히려 100원짜리 한 장을 주시며 “고맙다 내 아들아!” 하셨다. 그 후, 우리는 서울로 이사하여 멀다는 핑계를 대며 카네이션을 어머니께 달아드리지 못했고, 또 머나먼 이국만리 미국땅에 와서는 태평양이 가로막혔다는 운명적인 핑계까지 대가며 카네이션 한 송이를 달아드리지 못한 기억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어느 날, 어머님이 세상 떠나셨다는 부고를 받고 나는 이제 어머니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상실해 버린 불효자가 되고 말았다.

카네이션 꽃에 대한 환상이 남달리 크셨던, 어머님의 정령(精靈)이 매년 내 마음을 흔들어 아직까지 그때의 후회스런 죄책감 속에 젖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눈 내리던 저녁이었다. 하얀 눈을 머리에 얹고 들어온 아내가 여느 때와는 달리 크게 화를 내며 다짜고짜 나에게 불평을 쏟아내었다. “남들은 오늘이 발렌타인 데이 라며 초코렛을 선물한다, 장미꽃을 사 준다 난리들인데 당신이란 사람은 도대체 뭣 하는 사람이요?” 하며 화살을 퍼부어대는 것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여보, 발렌타인 데이는 우리나라 명절이 아니잖소! 이날은 서양의 젊은이들이 사랑을 고백하며 장미를 선물하는 서양의 명절이요!” 하자 그녀는 “여보 그건 당신이 돌아가신 당신 어머니께도 늘 하던 핑계잖아요.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지키라는 속담을 벌써 잊고 사세요?” 나는 그만 그녀의 예리한 장미가시에 찔려 버리고 말았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미100만 송이도 아낌없이 준다는데 당신으로부터는 여태까지 장미 한 송이도 구경 못했소!” 라는 말에 더 이상 할 말을 잃은 체, ‘심는 대로 거둔다’는 성경말씀과 동시에 고등학교 때 효자인 척 입만으로만 낭송하던 송강의 시(詩)가 떠오른다.

“아버지 날 나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이 두분 아니었으면 나 어찌 살았으랴... 부모님 살아생전에 섬기기를 다하여라” 다가오는 어머니날엔 이제라도 평생 나를 위해 희생하다 돌아가신 어머님 영전에 하얀 카네이션 한송이를 잊지않고 바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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