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액의 비밀

2012-05-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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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

나뭇가지도 꺾이거나 상처를 입으면 아픔을 느낀다. 아픈 상처를 치유하거나 나쁜 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나무는 눈물 같은 하얀 액체를 분비한다. 이것이 유액(乳液)이다. 유액은 나무가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거나 이겨내기 위해 흘리는 눈물이지만 자연과 사람에게 전달되어 놀라운 유익을 끼치고 있다.

말레이의 섬에서 자라는 고무나무는 양질의 천연 고무액을 함유하고 있다. 고무나무 껍질에 상처를 내면 끈적거리는 유액이 흘러나온다. 흐르는 유액을 그릇에 받아 한참 놔두면 처음에는 말랑말랑한 크림 상태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딱딱한 천연고무가 된다. 이것을 합성하여 자동차 타이어, 고무장갑, 장화, 약품, 옷감 등을 만든다.


나무의 유액 중 신비한 것은 옻나무 유액이다. 옻나무 유액으로 옻칠을 한가구는 색상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습도가 높은 곳에서도 나무가 뒤 틀리지 않고 천 년 이상 원형 그대로 보존된다. 만든 지 700년이나 지난 팔만대장경이 지금까지 글자 하나 손상되지 않고 보존 된 것도 옻칠 때문이었다. 화학성 도료나 니스로 발라놓은 것과는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옻나무 유액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옻나무는 아무데서나 자라지 않는다. 해발 400미터 이상 되는 높은 산으로 들어가야만 15년 이상 자란 양질의 옻나무를 만날 수 있다. 또 옻은 아무 때나 채취하지 않는다. 초여름이 시작 될 무렵부터 3개월 까지 한 나무에서 200-300그램 정도만 채취한다. 그래야 옻의 신비한 효력이 나타난다. 옻을 바이얼린의 마감재로 사용한 바이얼린 명장(明匠)이 있다. 스트라디바리(Stradivari)다. 다른 사람이 만든 바이얼린은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폐기되었지만, 그가 만든 바이얼린은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음색이 변하지 않았다. 악기에 금이 가거나 뒤틀림 현상 없이 잘 보존되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옻칠 때문이다.

아픔의 눈물인 유액은 나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다 속의 조개도 아픔이 있을 때 유액을 만들어 배출한다. 연한 조개의 살 안으로 날카로운 모래알이 밀고 들어오면 조개는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에 직면한다. 이때 조개는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상처가 아물 때까지 모래를 품고 눈물을 흘리는데 이것이 바로 조개의 유액인 나카(nacre)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카가 두껍게 쌓이면 매우 단단해지면서 영롱한 빛을 발하는 보석이 된다. 이것이 진주다.

요즘은 진주 같은 사람을 만나보기 힘들다. 물질문명에 도취된 현대인은 화려한 진주 같은 성공과 결과를 열망하면서도 고난과 아픔을 이겨내는 눈물(유액)의 수고는 애써 기피하려고 한다. 특히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서 모험을 포기하고 쉽고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좀 힘든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으면 쉽게 좌절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살아있는 것의 끈질긴 생명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당신은 리더인가. 나카(nacre)유액의 비밀을 배우라. 진주도 처음에는 모래였다. 그러나 오랜 시간동안 모래의 아픔을 끌어안고 기도하다 보니 어느 날 그것이 홀연히 변하여 빛난 보석이 되었다. 고난을 끌어안음을 통하여 환희를 경험했던 욥이 이렇게 고백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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