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5월 5일은 어린이날

2012-04-3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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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아동문학가 / 목사)

지난 4월 22일 자정에 루이지애나 주에서 불이 나 두 살, 다섯 살, 일곱 살, 여덟 살 난 남매들 넷이 타 죽었다. 아이들의 어머니 사케타 맥데일씨(26세)는 어린 아이들을 밤새 성인의 보호 없이 내버려둔 죄로 즉시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아이들 엄마가 아이들만 내버려두고 밤새 어디에 가 있었는지는 아직 조사중이다. 어쨌거나 아동방기(放棄)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범죄이다.

한국의 ‘어린이 날’(5월 5일)은 법령으로 공포된 지(1956년) 반세기가 넘어 이제는 한국인의 생활 속에 정착된 듯하다.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가족 휴일이니 얼마나 좋은 전통인가!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이고 희망이다. 어린이는 가장 놀랍고 아름다운 피조물, 그들은 말의 식욕과 원자탄의 에너지와 고양이의 호기심을 가졌고 독재자의 허파와 시인의 상상력도 지녔
다. 어린이는 모두가 천사이며 예술가이다. 그들은 참새와 이야기하며 별 나라를 왕래하고 꽃과 사귀며 나비와 함께 춤을 춘다.


어린이는 제비꽃의 부끄러움과 사냥개의 담대함과 분화구의 정렬도 가졌다. 그들은 놀라운 마술사, 당신이 아이들을 골방으로 내쫓을 수는 있으나 당신의 심장으로 부터 밀어낼 수는 없다. 당신이 그들을 부엌과 서재에서 추방할 수는 있으나 당신의 마음으로부터 떼어놓을 수는 없다. 아이들은 당신의 포수(捕手)이며 간수(看守)이며 보스(boss)이다.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를 시끄럽게 듣는다면 그 귀가 타락한 것이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만큼 더 평화로운 음향이 이 세상 어디에 있는가! 어른의 웃음소리 보다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훨씬 아름답다. 교회 건물을 함께 쓰는 미국 노인이 한국 아이들이 떠드는 것을 바라보며 귀엽다는 표정으로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다.”고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정말 어린이를 잘 이해하는 분이라고 생각하였다. 시인 타고르는 “모든 아이는 아직도 신이 인간에게 절망하고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품고 태어난다.”고 하였다. 예수님이 아이들을 축복하신 것은 그들 속에 밝은 내일의 소망과 하나님의 나라를 보셨기 때문이다.

아이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해서 이룩하는 오직 하나의 진실, 너와 나의 계승자,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어린이는 사랑 받기 위하여 태어났다. 그들은 우리의 보람, 때 묻지 않은 보화, 우리의 계획과 정책을 현실로 만들 내일의 주인공이다. 어린이 헌장은 미국에도 있고 유엔에도 있지만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이 짧지만(모두 11조) 잘된 것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그 중 몇 조항만을 읽어보자. “어린이는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 속에 자라야 한다.”(1조)고 되어 있다. 어린이라는 꿈나무의 토양은 따뜻하고 사랑이 듬뿍 주어지는 가정이다. 싸우는 가장, 억압적 분위기의 가정에서 내일의 꿈나무가 바르고 아름답게 자랄 수는 없다.

“어린이는 해로운 사회 환경과 위험으로부터 먼저 보호되어야 한다.”(8조)는 말도 나온다. 이 헌장이 제정된 1957년과 60년 후인 오늘과는 ‘해로운 사회 환경’이란 면에서 하늘과 땅의 차이로 벌어졌다. 학원 폭력, 환각제, 조기 성(性)경험, 담배, 해로운 TV와 인터넷 장면 등 옛날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환경들이 아이들 앞에 도사리고 있다. 아이가 태어날 때 거의 모든 부모는 그 아이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정상적이기를 기원한다. 즉 평균 수준을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커갈수록 부모의 욕심은 평균치 인간에 만
족하지 않는다.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의 그 기원과 감사를 오래오래 지속할 수 있는 부모만이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가진 부모의 자격을 갖춘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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