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My Way, Our Way

2012-04-3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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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목(주뉴욕총영사)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한 장의 사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승리한 연합군에 끌려온 독일군 포로 속에 발견된 한 동양인(조선인)이 모티브가 되어 만들어진 강제규 감독의 한국영화 ‘My Way’. 지구 반 바퀴에 이르는 유라시아대륙 1만2,000km 전장을 강제로 끌려 다니면서 꿈을 생명을 지켜가야 했던 1940년대 한 조선청년의 고단한 삶의 여정을 쫒다보니,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고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분단한국의 현실이 새삼 마음을 짓눌러온다.

영화에서 주인공 준식은 손기정 선수와 같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꿈꾸는 청년이다. 그러나 식민지 청년 준식이 올림픽 대표가 된다는 것은 꿈 같은 일. 이런 상황 속에서 준식은 일본인들의 부당한 경기 조작에 항의하다 일본군으로 강제 징집되기에 이른다. 중국과 몽고 국경, 시베리아, 동유럽, 노르망디에 이르기까지 생사를 넘나드는 하루 하루의 연속, 그러나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처절한 상황에서도 준식은 꿈을 포기하지 않고 달리기를 계속한다. 이런 준식의 모습을 보며 내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을 떠나야했던 다양한 운명의 한인 1세대들이 떠올랐다.


어려운 조국의 현실과 국제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떠밀리듯 국경을 넘고 또 넘으면서도 살아 남기 위해 악착같이 버티는, 그러면서도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려는 세계 각지 이민 1세대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미주사회의 이민 1세대들도 My Way의 준식과 같은 시대상황 속에서 처절한 인생유전을 겪으면서 좌절하지 않고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살아남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오늘날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같은 세계적 영향력을 갖는 롤모델들을 끊임없이 배출하였다.

이렇듯 미주 한인사회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면서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미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각지로 흩어져 뿌리를 지키려고 몸부림쳐온 많은 한민족 동포들의 소설 같은 삶과, 지금 중국과 주변 여러 나라 사이 수천 킬로미터를 가로지르면서 내일의 운명을 모른채 숨막힌 삶을 살아가야 하는 탈북동포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또한 없을 수가 없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7대 무역대국,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여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 뿐이랴.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 있는 문화와 흥의 끼가 K-pop 등 한류로 성장하여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어렸을 때는 한국 출신이라고 말하기가 창피해서 부모의 나라가 어디라고 얘기하기 싫었지만 지금은 한국,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워요.” 2세들에게 가끔 듣게 되는 가슴 뭉클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 한인 2, 3세대들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모르고, 한국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면, 그건 또 다른 불행이고 손실이다. 한인 2. 3세들은 이곳 미국 땅에서 그들 부모의 강인한 유전자와 꿈, 그리고 전체 한국인의 기대를 등에 업고 달리고 있다. 그들의 마라톤에는 전세대가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끈질긴 생명력이 투영되어 있다.

“비참하고 강요된 한민족의 디아스포라가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지. 하루빨리 통일강국을 이루어 다시는 강대국간에 벌어지는 침략과 싸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아야지. 이제 우리에게는 전세계를 누비는 빛나는 새 세대들이 있지 않은가?”. 영화 My Way는 이런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 주고 싶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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