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동물

2012-04-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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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휘(언론인)

동물은 자기 통제력이 없다. 본능에 따라 산다. 배고프면 먹이를 찾아, 풀을 뜯거나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다. 그것이 다른 생명을 해치는 살생이란 것도 모른 채 굶주린 배만 채우면 그만이다. 인간은 자기 통제력이 있는 동물이다. 모든 행위가 본능적 충동에 의해서만 행해지진 않는다는 말이다. 선과 악을 구분하고 사회질서에 해로운 행위는 자제하는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혼란과 위험을 막는 지혜가 있다. 그래서 ‘영장 동물’이란 영광스런 호칭까지 달고 산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를 철저히 통제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통제력을 잃고 사는 사람도 많다는 얘기다. 평시엔 잘 나가다가도 어떤 자극을 받으면 앞뒤 분간 못하고 화를 내며 자기를 상실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불쑥 솟구치는 감정과 속에서 발동하는 욕구를 적절히 처리하지 못해 엄청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사소한 일상의 언행으로부터 마약 중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태로 나타난다.

문득 몇 해 전에 유명을 달리한 동기생 생각이 난다. 유난히 감성적이고 나약해 보이던 그 친구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병력을 가진 후에도 여전히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었다. 한 번은 식사 모임의 자리에서 혼자 복도 쪽으로 나와 서있는 걸 보고 왜 여기 혼자 있느냐고 물으니,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어 나왔노라고 했다. 집에 가면 마누라 등살에 기호품을 즐기는 권리마저 박탈당하기 때문에 이런 절호의 찬스를 놓질 수 없지 않느냐고 하면서. “자네에게 그것은 기호품이 아니라 독약이다. 독약을 기꺼이 먹이는 마누라가 세상에 어디 있
겠느냐. 마누라를 야속타 하지 말고 자신을 통제하는 의지를 길러라. 우리는 사관학교 시절부터 온갖 고통과 역경을 이겨내며 살아오지 않았느냐. 담배 끊는 일이 육군사관학교 4년의 생활보다 어려울 게 뭐 있느냐”며 우정 어린 충고를 했다. 직업군인답지 않게 낭만을 좋아하고 시를 쓰며 문학을 사랑하던 그는 그렇게 살다가 갔다.


제3자로서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 할 수 있지만 나 자신을 이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하루도 타인과의 접촉에서 벗어나 살 수 없다. 입산 수행하는 수도승이나 독방에 갇힌 죄수 같은 극히 제한된 인사를 제외하고선 말이다. 사람들 사이의 접촉은 흐르는 물처럼 유연할 때는 즐거움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티격태격 말다툼이나 심지어 멱살잡이까지 하며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헌데 웃기는 것은 그 다툼의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너무 사소한 일이라는 것이다.

하찮은 체면, 자존심, 자기과시, 편견, 오해 등으로 인해 서로의 관계를 흐트려 놓는 경우가 많다. 자기의 기분 내키는 대로가 아니라 참을 것은 참고 삼갈 것은 삼가며, 특히 상대에게 폐가 되거나 싫어할 일은 스스로 자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가끔은 하릴 없이 멀리 닿아 있는 푸른 하늘을 쳐다 보며 끝없이 이어질 무한의 시간을 머릿속에 그려보자. 무궁무한(無窮無限) 속의 한 티끌의 존재, 그 존재가 현재 나의 실존임을 자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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