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샤하르의 조언

2012-04-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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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우리 옛말에 ‘망아지를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시골로 내려가 자식교육에 성공한 한국의 대기업 팀장 부부가 있었다. 이들 부부는 주위 만류에도 불구하고 ‘분주한 인생 대신 느리게 사는 인생’을 택했다. 그리고는 아이를 학원 한번 안 보냈다. 대신 동네 개울에서 물장구를 치고 좋아하는 축구도 원 없이 즐기도록 놔뒀다. 공부는 물론 아버지가 좀 봐주었다.

전교생 200명 남짓한 벽촌의 초伋중 伋 고교를 나온 이 아이가 올해 프린스턴 대학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합격했다. 다른 명문대 9곳에서도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도시의 고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나오고도 아이비리그 대학에 낙방하는 한인학생들에겐 충격이 아닐 수 없다.지금은 지원서를 제출한 대학으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은 학생들이 5월초까지 진학할 학교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다. 학생들이 학교를 정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명문대학에 입학했다고 해서 졸업이나 사회진출 면에서 꼭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명문대학에 들어간 후 그 학교가 적성에 맞지 않거나 성적을 따라가지 못해 중간에 도태되는 학생이 많고, 심지어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자살까지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컬럼비아대 김승기 박사의 ‘아시안 아메리칸 교육에서 2세 충돌’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지난 2007년까지 22년간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한 한국인 학생 1,400명 중 졸업한 학생은 784명(5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44%의 학생은 도중에 학교를 그만뒀다.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가 전국의 12개 명문대학을 대상으로 조사한 지난 10년간 학생들의 자살률은 학생 수 10만 명당 MIT는 11명, 하버드는 7.4명, 존스 합킨스 대학은 6.9명꼴인 것으로 밝
혀졌다. 한국에서도 최고 명문대학인 카이스트에서 지난해 학생 4명이 연달아 자살해 큰 충격을 안겨줬었다.

최근에도 또 이 학교에서 한 학생이 자살해 명문대 학생들의 심리적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 가를 보여줬다. 과정을 무시하고 무조건 명문대학만을 지향하는 한인부모들의 높은 기대감과 무모한 도전이 부른 불행한 결과이다. 이제는 미국사회도 점점 경쟁이 치열해져 중학교에까지 입시열풍이 불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명문고교 입학에 초점을 맞춰 오던 사교육 열풍이 최근엔 명문 공립중학교 입학 경쟁으로 확대되면서 부모들이 초등학생 자녀의 사교육비와 과외활동비로 수 백-수 천 달러를 서슴없이 지출할 정도라고 보도했다. 긍정심리학자 탈벤 샤하르는 하버드대 학생들에게 경쟁보다 행복을 택하라는 ‘행복학’을 강의해 화제가 됐었다. 유대인인 그는 열여섯 살에 이스라엘 전국 스쿼시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는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우승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우승이 가져다준 행복감은 며칠도 못가 바닥이 났다. 그때서야 그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으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쟁에서 남보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빠르게, 더 멋지게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첩경이며 더 의미 있는 삶을 방해하고 옥죄는 형틀이 될 수 있음을 터득했다고 그는 밝혔다. 아무리 명문학교라 할지라도 공부를 경쟁적으로만 하면 결과는 오히려 성공이나 행복과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
올해 대학졸업 예정자들의 취업전선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고 한다. 대학문을 나서는 졸업생의 절반이 지난해처럼 일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처럼 경제난, 취업난을 겪는 시기에는 더더욱 졸업 후 가질 잡의 기회여부도 고려해서 학교를 선택해야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자신에게 맞는 학교에서 미래가 보이는 학과공부를 행복한 기분으로 했을 때 가능한 결과이다. 유난히 명문대학에만 목을 매는 일부 한인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샤하르의 조언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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