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이라인 파크가 말한다

2012-04-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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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좋은 곳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뉴욕의 하이라이트를 놓칠 뻔하였습니다” 한국의 저명한 최병관 사진작가의 전화다. 그가 DMZ 내의 여러 모습을 찍은 사진 전시회가 UN빌딩에서 열렸었다. 그것을 관람한 느낌이 실린 필자의 글을 읽고 답례전화가 왔을 때 “하이라인 파크에 가보셨나요?”라는 질문을 하였었다. 앞에 있는 사진작가의 한 마디는 새로운 형태의 공원에 대한 느낌을 단적으로 알려준다.

이 공원의 모습은 특징이 있다. 땅 위에 높다랗게 마련한 기찻길을 예전에는 화물열차가 왕복하였다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쓸모가 없어진 바로 그 길이 하이라인 파크가 되었다. 20블럭에 이르는 공원길 양쪽에는 야생초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소박한 꽃들이 수줍게 웃는다. 여기 저기 나무로 만든 벤치나 의자들이 알맞게 배치되어 산책 온 사람들이 앉아서 푹 쉬고 있다. 일찍 온 사람들이 즐기는 것은 침대 크기의 평상인 듯 언제나 그들이 편안하게 누워서 쉬는 모습이 한가롭다.


또 하나의 특징은 중간쯤에 계단식 전망대가 있어서 편히 앉아 뉴욕 시가의 일부를 내려다보는 즐거움을 준다. 남쪽으로 가면서 보이는 서쪽 바다는 맨하탄이 섬임을 일깨워주며 깊이 숨을 들이마시게 한다. 이 모든 즐거움은 뉴욕시가 시민에게 준 큰 선물이다.

우리들은 쉴새없이 새로운 물건을 만들고 부수고, 또 만들고 그것을 허문다. 언젠가 건축을 공부하면서 파괴하는 방법도 함께 연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란 일이 있다. 그러나 그게 자연스럽고 그럴 수 밖에 없다. 쓸모 없는 고가철도를 어떻게 없앨 것인가를 연구할 때 갑론을박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기찻길을 없애지 말고 활용하자는 의견이 나왔음에 손뼉을 친다.

그 공원을 가끔 산책하면서 야생초 사이로 붉게 녹슨 옛 철로가 보일 때마다 그것이 신기하다. 버려진 옛 철도가 공원으로 탄생하였으니 아기가 새로 태어났다. 생각은 새로움을 낳고, 새로움은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있는 그대로를 모방하지 말고 무엇인가 한 가지 자기 생각을 보태는 훈련을
한다. 이런 습관 기르기를 생각한다면 학과목, 시간대에 관계가 없다. “네 생각은 어디에 있지?”라는 질문을 하고, 그들은 “이거”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든지, 짧은 말로 알려주면 된다. ‘이야기를 이어가기’ 도 하나의 방법이다. “어느 곳에 아기가 태어났어요”“아기는 무럭무럭 자랐어요” “하루는 아기가 길에서 강아지를 만났어요”“강아지가 아기에게 말했어요”... 이렇게 여럿이 하나의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학생들은 생각하면서 어느새 생각하는 나무가 된다.

여럿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도 재미있다. 각자의 생각이 모여 큰 그림이 되는 것이다. 다같이 마을을 만드는 것은 어떤가. 길 만들기, 집 만들기, 산과 나무 만들기, 사람들 만들기...가 모여서 마을을 이루면서 모두의 생각을 한 자리에 모으게 된다. 한 줄씩 글을 써서 하나의 이야기 만들기, 한 사람이 한 장씩 그림에 글을 쓴 것을 모아 책 만들기... 등 얼마나 재미있을까.
이 경우 우리가 인정할 것은 사람마다 제각기 생각이 다르다는 것, 그 생각들의 우열을 따지기보다는 ‘다름’을 즐기고 유효하게 활용하자는 것이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보물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역사는 발전사인 것이다. 개인의 특색이 겉모습 같지만,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른 생각’이 개성의 큰 차이를 보인다. 생각이 깊거나, 색다르거나, 폭이 있거나, 융통성이 있을 때 그것이 바로 사회에 공헌하게 된다. 하이라인 파크가 말한다. 내가 현재의 모습으로 태어날 때까지의 발상, 기획, 조성 상황, 점검
과정...등이 하나의 중심에 모였을 때 특출한 예술품이 된 것이다. 근대의 기계문화, 디지털문화는 아날로그문화, 소박한 전원문화와 함께 있을 때 균형이 잡힌다고. 하이라인 파크는 뉴욕의 올레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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