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 지성인의 용기

2012-04-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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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영(전 언론인)

이스라엘 정부가 독일의 작가 ‘권터 그라스’를 기피인물로 낙인하고 평생 이스라엘 땅을 밟지 못하게 하는 입국금지조치를 취하게 될 것 같다고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하였다. 그라스는 ‘양철북(Die Blechtrommenl, the tin drum)이란 장편소설로 1999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독일의 대표적 작가이자 버트런드 럿셀, 노엄 촘스키 제레미 리프킨, 안드레이 사하로프 등과 함께 인류의 양심으로 추앙 받는 문명비평가의 한사람이다.

그는 최근 쥐트 도이체 짜이퉁을 비롯한 독일과 유럽의 일간신문들에 이스라엘이 적대국 이란에 대한 핵공격을 획책,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장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미국에서도 그렇지만 전후 독일인들은 반유대주의자로 몰리게 되는 것이 두려워 유대인과 이스라엘 비판을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왔었다. 히틀러 시절 유대인 대량학살이란 원죄가 있는 독일은 패전후 일본과는 달리 책임자는 처단되고 엄청난 배상금을 물어주고도 끊임없이 시달림을 당하고 있다고 유대인이 쓴 ‘홀로코스트 산업’이란 저서가 폭로하고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어떤 패악질을 하여도 개인이나 정부, 민간단체 할 것 없이 입을 다물어 왔다.


이런 배경과 환경에서 독일의 대표적 지성인 중 한사람이 오랜 침묵을 깨고 과감히 이스라엘을 맹비난하고 나섬으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있는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에 잠수함을 만들어 팔고 있는 독일도 공범자라고 규탄하고 있다. 그가 발표한 시에는 항속거리가 멀어 전폭기에 의한 공중폭격이 불가능한 이스라엘이 잠수함에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싣고 핵개발을 서두르고 있다는 이란 근해로 잠입하여 그곳 핵시설에 선제공격을 감행, 핵전쟁 참화를 불러 일으키려 하고 있다고 썼다. 이런데도 침묵하고 있는 것은 양심이 허용하지 않는다는 양심선언이 시어로 표현돼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이나 러시아의 장거리 전략 핵잠수함 대신 작전수역에서 밧데리로 잠항, 소음이 전혀 없는 돌핀급 고성능 소형잠수함을 여러 척 독일에서 수입하였다. 미국은 막강한 국내 유대인 로비단체의 압력으로 오랫동안 이스라엘 일방지원의 대중동외교정책을 펴옴으로서 아랍세계를 적으로 돌려놓았다. 이것은 결국 9.11테러의 빌미가 되었고 이라크, 아프간 전쟁의 수렁에 빠져들게 된 원인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총기소지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넓은 땅 이곳 저곳에서 해마다 정신질환자가 돌출, 까닭 없는 총질로 죄없는 젊은 학생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정신나간 짓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고질적 미국병도 전미총기협회(NRA)라는 막강한 세력의 로비 때문에 대책이 없다. 일부 주에서 한때 총기규제법이 제정됐으나 위헌소송을 당해 대법원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NRA의 강력한 영향 아래 있는 워싱턴 정치권도 이 시안 만큼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총기규제를 절규하는 희생자가족을 비롯한 대다수 미국인들의 열망은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원칙에도 어긋나고 국가이익에도 반하는 이런 잘못된 정치 외교적 관행, 비현실적 법제의 과감한 개혁의 불씨를 앞당길 수 있는 용기 있는 지성의 출현이 요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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