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잔인한 달’의 교훈

2012-04-1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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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4월은 흔히 ‘잔인한 달’로 불린다. 이 말은 미국태생의 영국시인 T.S 엘리옷이 1922년 발표한 현대 시 ‘황무지에 나온다. 엘리옷은 마치 90년 후 미국의 한인 이민자들이 겪을 참상을 예견이라도 한 모양이다. 한인들에게는 4월이 유난히 잔인한 달로 기억되기 때문이다.1992년 4월29일 LA에서 발생한 흑인 폭동사태로 한인들의 삶의 터전이 한순간에 폐허가 됐다. 2007년 4월16일에는 버지니아 공대학생 조승희가, 금년 4월2일에는 오이코스 대학(캘리포니아
주) 퇴학생 고원일이 각각 캠퍼스에서 총격에 의한 대량 살상사건을 일으켰다.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한인들의 4월은 잔인한 달일 수밖에 없다.

LA의 4.29폭동은 백인 경찰관들이 흑인 우범자 로드니 킹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몰매를 가하는 장면이 TV 뉴스에 방영된 것이 발단이었다. 격분한 흑인들이 난동을 일으켜 애꿎게도 한인업소들을 방화하고 약탈, 한인업소들이 불바다로 변했다. 조승희의 무차별 총격사건은 사망자 33명, 부상자 25명 등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 학살극으로 기록됐다. 고원일도 한명씩 차례로 처형하듯 7명을 총격살해하고 3명에 부상을 입히는 만행을 저질렀다.

한인들은 물론 모든 미국인들을 경악케 한 이들 사건의 밑바닥에는 한인들이 주류사회에서 격리되고 단절된 삶을 살아온 독불장군 식의 생활패턴이 깔려 있다. 조승희와 고원일은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해 왕따 당하는 상태였고, LA폭동은 가해자인 흑인사회와 피해자인 한인사회가 근본적으로 유리돼 있었으며, 폭도들에 대한 대응도 속수무책이었던 점에서 한인사회가 주류사회와도 철저히 단절돼 있음이 드러났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주위와 어울리지 않고 혼자만 산다는 것은 끔찍한 대형사건의 피해 요인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4월에 특히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집단 전체를 대상으로 가하는 타인종의 무차별 폭행이나 살상, 증오범죄 등이다. 오는 29일이면 LA폭동 20주년이다. 이 사건은 한인들에게 정치력 배양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만들었고 우리가 누구인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우리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이웃이나 다른 인종과 부딪치며 살 것인지, 어떻게 서로 화합하며 닥쳐올 위기에 대비해야 할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소수민족 중의 소수민족인 한인들이 다른 인종과 화합 연대하지 않고 우리끼리만 똘똘 뭉쳐 산다면 결과적으로 오는 것은 외부와의 단절이다. LA폭동은 한인업주들이 고객인 흑인사회와 평소 가깝게 지내지 않다가 4.29가 터지자 동네북이 된 사건이었다.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는 내몰림이나 단절은 정신의 어두운 지역으로 고립시켜 화, 분노, 절망감 등이 비정상적인 통로를 통해 극단적인 광기로 분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는 가난한 젊은이다. 공부까지 중단해야 하는 그에게 전당포 노파는 악착같이 그에게 돈을 뜯어낸다. 마침내 그는 참다못해 그녀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코너로 몰릴 때 생겨나는 극단적인 심리현상의 발로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상대, 혹은 어떤 집단을 단죄할 권리가 있다고 확신하면서 스스로 파시스트가 되는 것이다. 히틀러도 사람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쓰레기로 보며 모조리 청소해 버려야겠다는 심리적인 광기에서 유대인을 600만 명이나 죽이는 집단 대학살을 저질렀다.

우리는 지금처럼 어려운 경쟁사회에서 이런 불행을 겪어서는 안 된다. 어느 상황에나 어울릴 수 있는 적응력과 무시당하지 않는 실력을 배양하는 길 밖에 없다. 안 그러면 4.29폭동이나 조승희-고원일사건이 보여주듯 개인과 커뮤니티 전체가 당하거나, 반대로 남을 죽이게까지 되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어디에도 잘 동화하고 밀리지 않는 강한 자, 강한 집단만이 살아남는다는 힘의 논리를 ‘잔인한 달’ 4월에 다시 한 번 일깨우자.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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